DEUT67 신명기6장7절

신앙의 새 발견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씀을 시각화합니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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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과 유사임마누엘 [No Pseudo-Emmanuel 유사임마누엘을 버리자]

*** 임마누엘 (EMMANUEL 임매누얼)은 마태복음 1:23에서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God is with us는 의미입니다. 주어는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체적 결단과 뜻대로 자유로이 스스로를 나타내실 때 사람은 임마누엘 신비체험을 맞이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1에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 받는 자임을 알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나타내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체험이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찬의 임마누엘 신비체험의 소망 근거입니다. 사도행전 1:8에는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스스로를 나타 내시면 그때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 체험이 임마..

성탄과 공중재림 [예수님의 체류지 지시하심]

우리는 누구든지, 크리스찬이든 비크리스찬이든, 이 세상의 체류지에 따라 일어날 하나님의 일반적 통치상황의 영향을 받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크리스찬이면 하나님의 통치일반상황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거나 혹 죽음을 맛보게 되어야 할 곳에 있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나라 주님의 품으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할 것 입니다. 명목상 크리스찬과 비크리스찬이면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거나 혹 죽음을 맛이하게 되어야 할 곳에 있게 되면 그 사람은 불못을 거쳐, 말라기를 통해 전해주시는 하나님말씀처럼, 재가되어 멸망받은 자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게 될 것 입니다. 말라기 3:16-18, 4:1-3, 누가복음 16:22-26, 요한계시록 20:15. 하나님 말씀이 이와 같을진대, 사람이 겉으로 드러나는 이..

부지런한 크리스찬의 의미 [바울의 크리스찬상]

바울이 바나바의 손을 잡고 안디옥에서 성경공부 일년 프로그램을 통해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의 사회문화적인 상 A Socio-Cultural Image of Christians 을 갖게 했다는 점과 바울 자신이 산 하나님을 뵌 후 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의미를 깨닫고 전하고자 하는 주 성령님의 일생 프로그램 체험을 통한 크리스찬의 총체론적 상 A Holistic Image of Christians 사이에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주의를 주신바와 같이 "밀집과 밀 [한국어 번역, 겨와 밀]" 사이 만큼이나 근본적으로 비교조차 불가능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6, 고린도전서 2:15-16, 예레미야 23:28. 살아계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해 사는 인생이 후자에 속한다면, 그..

하나님을 만나면 [성물계시, 고전 2:9]

하나님을 만나뵐때 크리스찬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까요? 관련 성구들과 간단한 말씀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고린도전서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는 것이]었다" 함과 같으니라." (1)하나님을 뵙는 계시체험 당사자는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사랑하는 자들 속에 속한 자로 인정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2)눈으로는 보는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계시라 할수 없다. 이 표현은 눈뜨고 지각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뜻 입니다. 영어로 Perceive가 아니다. 그러면 Conceive 마치 자기 속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의지 상상력과 구별되는 뜻..

차목사n소통 2018.12.09

말할수없는기쁨 = 선포 [영어성경공부, 고전1:31 Ineffable Pleasure]

바울은 성경과 체험을 통하여 사람의 자랑이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 주님처럼 EXODUS 엑소더스, 떠나는 일을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요인임을 잘 알았습니다. 누가복음 9:31, 고린도후서 12:4, 빌립보서 3:7-8. 이 세상의 것은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뵙는 그 사랑만이 영원한 삶을 갖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사람보다 먼저 앞서서, 자기 피조물인 사람을 사랑하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라 말합니다. 로마서 8:39, 신명기 6:4-5. 문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신비속에 들어가 본 어느 누구도 도무지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INEFFABLE THINGS 인어퍼블씽즈 말할 수 없는 것들," 한국어 성경번역어는 말할 수 없는 말, ..

잘못 인용되는 성구들 [하나님의 성물, 요 1:13, 고전 1:30]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성경번역상의 미세한 오류를 통해 야기될 오해들을 그대로 허락하셨을까요? 그 답은, 필자의 의견에, 사람 마음씀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섬세한 분별력을 갖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열쇠는 사랑이죠! 사랑하면 사랑을 위해, 사랑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시기를 따져보게 되고, 또 할 줄 모르는 일이라도 시기를 따라 위험을 무릎쓰고 시도하게 되는 게 참 마음씀이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이런 표현은 실상 사람마음 중심으로 한 말이고,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 지도해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 처럼, 그런 신비체험을 하게 될때 우리 각 사람은 그것이 주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신바 주 성령 하나님 ..

자랑 ≠ 영광 [하나님앞에서 있는자와 없는자로 살기, 고전 1:2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사회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많은 한국 설교자들은 실상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외면하거나 무시해 왔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4. 교회공동체적 집단의 사회적 하나님영광이란 하나님앞의 영광과 무관하다는 말씀!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생애와 말씀을 통해 명백하죠! 사도 요한이 잘 전해 주는 바와같이 헬라인들이 예배하러 올라왔다가 예수님 뵙기를 원했을때 우리 주님께서는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성물 = 하나님의것 [가짜와 진짜, 사 66:17, 고전 1:25, 27-28]

성물은 하나님의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기성결을 내세워 스스로 성물이라고 주장하며 사회적 권위를 차지하려는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과연 성물이 자기성결에 의해 주장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과 함께 그 권위는 끝나는 게 마땅하겠죠! 바로 그렇습니다. 성직이라는 말 자체도 사회적인 권위를 위한 명명이죠! 엄밀한 의미로는 사회적 직업명으로서만 이해되고 사용되는 게 맞습니다. 하나님나라 영원한 곳에서 자리를 찾아 볼수 없는데 어떻게 거룩하다고 성자를 붙일 수 있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것으로 또는 성물이라고 주장하는 하나님 앞의 가짜 성물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사야 66:17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다른 가능한 번역, 목상..

설교로 복음전파되지 않는다 [마 7:24, 고전 1:17, 21]

크리스찬이라 하면서 성경을 집중하여 읽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단서를 찾고자 하지 않으면, 오늘 대부분의 한국 설교자들과 교인들처럼 "설교가 주된 복음전파의 통로"라고 잘못된 상식에 경도된 채 복음전파자의 사회적 권위를 외치고 이를 받아들여주는 비성경적인 상황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됩니다. 바울을 굉장한 것처럼 말하고 또 그의 말을 잘 이해하고 아는 것처럼 설교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말이 씨가된다"고 한국의 유교적 정서와 그 풍토를 그대로 교회로 옮겨 놓고 언어를 억압하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않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리라," 마태복음 7:24, 말씀하셨습..

차목사n소통 2018.11.26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배불리는 십자가] 자기를 이기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아닌 두 가지 경우를 말씀하셨다고 사도 요한은 전해주죠! (1)요한복음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유대인의 공동체세움을 통해 배부르게 하는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보통 예루살렘 초대교회라 부르는 유대인들의 크리스찬 공동체대표로 있을때 저와같은 범주의 잘못을 범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1. 교회활동에 참여함으로서 자기 배의 욕구를 총족시키는 십자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가 아닙니다. 자기 꿈의 십자가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교회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베드로처럼 깨닫게 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하심의 때를 맞이할 소망이 있을 것 입니다..

잘못 인용되는 성구들 - 바울의 구원론 [고전 1:17, 21]

성경성구에 대한 일차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 접근법은 인문학입니다. 설교자가 인문학적 소양이 적으면 논리성이 결여된 인과적 오류를 낳게 되어 지식인들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무식한 설교자라는 비난을 받게 되죠! 인문학적 소양이 상당한 설교자는 성경을 초학문적 신비체험배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