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신앙의 새 발견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씀을 시각화합니다! 자세히보기

요 5:44 13

영광보다 영생

Glory 글로리 영광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뜻 성취에 대한 현상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말인데 반하여, Eternal Life 이터널라이프 영생은 예수님의 계시에 의한 천국의 삶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Glory 글로리 영광을 하나님의 뜻과 성취라는 의미론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성취 또는 경쟁이라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접근하는 경우 영생을 잃게 되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광 개념 [Glory 사용법] 요한복음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17:2,4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그건 믿음 아니고, 세상 악이다 [요 7:7]

예수님께서 유대인 집단을 평가하실때 가장 경계한 점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였습니다. 요한복음 5:44. 성경을 읽고 영생을 얻고자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니 예수님을 따르려 하지 않게 된다는 게 그 근본이유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39-42. 모세를 따른다고 말을 하나, 모세도 믿고 있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46-47. 유대인 집단이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된 이유가 무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자기들 유익을 위해 사용 또는 이용한다는 말이죠! 자기들 목적을 위해 성경 말씀의 일정 부분만을 인용하고 하나님 말씀이라 말한다는 말씀이죠! 이런 근본 동기가 무..

세력교회 놀부 크리스찬

흥부와 놀부전에서 놀부의 아내가 흥부의 뺨에 주걱을 휘두르는 장면은 현대 한국대형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형교회 목사들 또는 자기교회 목사만 목사지 이름없는 교회나 무임 목사는 그저 무능력하며, 큰 교회 다니는 사람 화나게 하면 뺨도 맞을 수 있는 불쌍한 약자라는 정서를 갖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놀부, 놀부의 아내, 현대 한국의 놀부 크리스찬은 다 같이 덩치큰 건물이 있고, 힘이 있고, 세력을 과시할수 있는 교회와 정서적 동일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니엘 11:38은 이 점을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세력의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금 은 보석 보물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를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력의 신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휘..

지식노동과 사랑노동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노동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사람에게 다스리게 하신 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6. 낙원에서 사람이 행한 노동은 다스림이요, 그 특징은 이름짓기였습니다. 창세기 2:19. 아담은 생물들의 이름을 짓기위해 하나님께서 자기 앞으로 보내 보게 하시는 각종 생물들을 관찰하는 노동을 했습니다, 자기 앞에 나타나는 생물들에 대한 관찰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낙원의 노동은 애초에 사랑노동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이었습니다. 아담의 사랑노동은 선악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악을 따지는 지식노동이 되었습니다. 지식노동의 결과는 죽음 사망입니다. 창세기 2:17. 지식노동은 자기에게 또는 우리 편에게 좋은지..

이혼을 막고 교회를 세우는 방법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 우물 곁에서 다섯 남편과 살았었고 이제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3.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추종자들이 참된 예배 대신 공동체정의론을 외치며 서로의 영광을 찾을뿐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주의시키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4. 뭔 주의를 하라는 말씀인가요? 참 예배 드리기 원하는 자를 예배가 아닌 심리물리적 간음의 현장된 공동체/교회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하라는 ..

자랑 ≠ 영광 [하나님앞에서 있는자와 없는자로 살기, 고전 1:2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사회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많은 한국 설교자들은 실상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외면하거나 무시해 왔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4. 교회공동체적 집단의 사회적 하나님영광이란 하나님앞의 영광과 무관하다는 말씀!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생애와 말씀을 통해 명백하죠! 사도 요한이 잘 전해 주는 바와같이 헬라인들이 예배하러 올라왔다가 예수님 뵙기를 원했을때 우리 주님께서는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배불리는 십자가] 자기를 이기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아닌 두 가지 경우를 말씀하셨다고 사도 요한은 전해주죠! (1)요한복음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유대인의 공동체세움을 통해 배부르게 하는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보통 예루살렘 초대교회라 부르는 유대인들의 크리스찬 공동체대표로 있을때 저와같은 범주의 잘못을 범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1. 교회활동에 참여함으로서 자기 배의 욕구를 총족시키는 십자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가 아닙니다. 자기 꿈의 십자가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교회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베드로처럼 깨닫게 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하심의 때를 맞이할 소망이 있을 것 입니다..

잘못 인용되는 성구들 - 바울의 구원론 [고전 1:17, 21]

성경성구에 대한 일차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 접근법은 인문학입니다. 설교자가 인문학적 소양이 적으면 논리성이 결여된 인과적 오류를 낳게 되어 지식인들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무식한 설교자라는 비난을 받게 되죠! 인문학적 소양이 상당한 설교자는 성경을 초학문적 신비체험배제 ..

하나님께서 두려움주시는 이유 [사랑의 행방]

***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시고 어려움에 처하게 하시는 이유가 나오고 또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으로 인한 위기와 아주 적은 수의 하나님사람을 인정하시는 방식 즉 두려움의 혜택이 나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교회로 모이고 서로 협력하며 칭찬하며 용기를 줍니다. 이른바 공동체주의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라 말씀하십니다. 종교용어로 말씀드리자면 공동체주의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이슬람의 신학적 소산물로서 불신앙 또는 인식적 무신론의 한 전형에 불과하다는 점을 깊이 주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주신 것 입니다. 어떻게 하는지 판단하시려고. 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점을 말씀하셨고, 요한은..

문화적 오류 바로잡기 [은혜와 긍휼, 성경의미를 압시다!]

*** 한국의 유교문화적 접근이 성경말씀에 대한 오해와 용어사용의 오류로 문제적 상황에 와 있는 대표적인 두 단어를 살펴봅니다. (1)은혜라는 말을 한국 교역자사회에서 확정된 또는 받아들여진 관계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경쟁제일주의적 문화 속에서 위계질서적 권위를 세우기 위한 용법으로 은혜라는 말이 잘못 쓰여지고 있는 바, 현실주의적 성경해석의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2)긍휼이라는 말을 비난받을 만한 일에 대한 암묵적 비난 자제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경쟁적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정치기술주의적 성경해석의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자, 성경에서 은혜와 긍휼을 어떤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출애굽기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

예수이름의 기도에 대한 오해 [요 14:13-14, 주님께로부터 오는 영광]

한국 교회에서는 기도에 관한 오해가 영광에 대한 의미 분별력 허약성과 함께 수 십년을 흘러 오고 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설명하셨지만, 유교문화권의 상명하복에 대한 정치현상학적 설교적용이 지속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곡해하고 오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주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지적하신 말씀과 같이 결국 살아계신 주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의 구술적 정치활동이 기도내용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 나라, 요 5:44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니라 사람들이 협력하여 드러낼 수 있는 성과물로서의 영광, 요 11:4 이 세상 죽음의 삶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죽음이 끝인 것처럼 대하는 자세, 요 12:23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려 나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