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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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동과 사랑노동

신명기6장7절 2019. 11. 15. 14:44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노동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사람에게 다스리게 하신 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6. 낙원에서 사람이 행한 노동은 다스림이요, 그 특징은 이름짓기였습니다. 창세기 2:19. 아담은 생물들의 이름을 짓기위해 하나님께서 자기 앞으로 보내 보게 하시는 각종 생물들을 관찰하는 노동을 했습니다, 자기 앞에 나타나는 생물들에 대한 관찰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낙원의 노동은 애초에 사랑노동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이었습니다.

 

     아담의 사랑노동은 선악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악을 따지는 지식노동이 되었습니다. 지식노동의 결과는 죽음 사망입니다. 창세기 2:17. 지식노동은 자기에게 또는 우리 편에게 좋은지 나쁜지 선악에 따른 정치적 관계를 결정짓기 위한 맛보기를 중심으로 이뤄지며, 그 특징은 땀흘려 열매 따먹기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6, 17. 사랑노동 외에는 살수 없는 낙원에서 추방된 지식노동은 이세상에서 현재까지도 노동의 정치적 맛보기를 통해 자기 또는 우리 편을 위한 편가르기의 현실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세기 3:24, 요한복음 5:44.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노동은 사랑노동이셨고, 천국에서 지금 행하고 계신 이 세상 통치도 사랑노동입니다. 아담이 낙원에서 실패했던 사랑노동도 아니고, 쫓겨나 살게된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도 인류가 해오고 있는 지식노동도 아닌, 바다도 소금도 없애시고 새롭게 창조하신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에서 제자들 크리스찬들이 실패없이 영원한 사랑과 삶을 살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사랑노동을 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9은 바울도 같은 이해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창조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들 즉 천국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의 피조물이니,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피조물 중에 유일한 특별성을 갖는다거나 하나님자신과 동일시하는 표현법으로 이해될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천국에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상황에 대한 이해는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노동이라 이해해야 옳으며, 그 목적을 이루시기까지 한시적으로 왕의 통치를 행하시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5:25-26에서 같은 의미의 표현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예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왕노릇해야만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예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 더 나아가 예수님 제자들 크리스찬들이 행하게 될 왕권은 이런 의미로 정치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않되고, 사랑노동의 양면성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합니다. 다니엘 7:17-18, 마태복음 19:28. 정치적인 왕의 통치 핵심은 정의라 말해지지만, 예수님의 왕의 통치 핵심은 사랑과 진실입니다. 마태복음 24:22, 요한복음 13:1, 14:3, 18:37. 각 사람 마음을 살펴 그에 맞게 사랑을 드러내시는 일 곧 진실을 위한 통치를 지금 행하고 계시는 중 이십니다. 그 끝은 사망을 끝낼때까지 입니다. 천국에서는 사망이 없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사야 25:8, 요한계시록 20:14. 예수님 통치의 목적 곧 사랑노동의 이유는 "모든 눈물을 씻기시는 일"에 있으십니다. 요한계시록 21:4.

 

     정치적인 지식노동에 빠지지 말고, 사랑노동을 행하는 크리스찬의 복된 나날들,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체험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