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신앙의 새 발견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씀을 시각화합니다! 자세히보기

하나님사랑/크리스찬심사표 30

사랑은 선택아닌 의지다 [요 13:34, 마 6:24]

*** 사랑이 선택 아닌 이유 즉 사랑이 선택일 수 없는 이유는 선택 = 주어진 것 말고 다른 걸 생각하고 있는 상황을 지칭하고 = 주신 것에 대한 불신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신명기 6:4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라"는 모세의 하나님 사랑 고백은 수적 선택적 또는 양적 사랑의 실패를 경험치 말라는 뜻입니다. 현대언어로 표현하자면, 선택해야 가능한 사랑은 믿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조건 상황에 따라 결단되는 선택적 사랑 곧 변할 수 있는 사랑을 누가 원하겠는가 말이죠! 학술적으로는 이와 같은 경우를 결정론적 사랑이라 말하며, 믿을 수 없는 것이라 규정합니다. 양적 경쟁적 가치가 큰 쪽을 비교 선택하여 관계를 맺고 끊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마음씀을 발견하게 된다면 스스로 사..

송구영신 신년해맞이 중단해야 할 이유 [갈 4:10-11]

갈라디아는 Asia Minor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터키지역 중 북쪽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서신 즉 갈라디아서는 유대교 율법 행동주의에 대한 경고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당시 갈라디아지역 유대계 크리스찬들 (주류가 유대인이며 개종한 타인종들이 포함됨)이 유대인들의 절기들 Yom Kippur 염키푸르 대속죄일, Passover 패스오벌 유월절, Sabbaths 쌔버쓰즈 휴일, Sabbatical Years 쌔버리컬이얼즈 안식년 등등에 대해 율법주의적 또는 현상적으로 접근하며 지켜오고 있는 점을 강하게 경고하는 장면을 살펴 봅니다. 그 경고의 핵심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나무십자가 형틀 수용과 하나님의 예수님 부활케 하심이 "유대교의 율법 행위로서는 구원에 이를수 없다"는 의미이기 ..

문화식탁말고, 크리스찬의 식탁양심! [눅 16:19-21, 25-26]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습을 비교하는 가장 흔한 예는 물질적 풍요와 결핍에 대한 인식적 언어 표현과 표상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식탁에 놓여 있는 밥과 반찬 또는 빵을 보고, "맛 있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상황에 대하여 "저 싼 걸 내가 먹어!"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의 인식적 언어 표상 사이에는 엄밀한 선이 그어져 있음을 우리는 누구나 압니다. 전자의 표현은 식탁에 올려져 먹을 수 있는 상황 자체를 허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후자의 언어 표상은 경쟁적 생활세계에 노출된 정도가 심하고 또 문화적 음식지수에 너무 민감하게 교육된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일..

주님사랑 판단성구 [물질복인가, 사랑복인가?]

주님의 말씀을 읽는 순간 읽는 자도 그 글을 읽으시는 장면을 다 아시는 주님도 그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죠! 주님의 판단은 곧 피조물 인생의 현재와 장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니, 진지하게 주님뜻대로 주님을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크리스찬을 위해 관련 말씀들을 하나 정리 소개해 봅니다. 한 번 주님을 향한 사랑을 결심하고 그 마음씀을 갖기 시작한 사람은 참 복된 사람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아주 가까이 있는 셈입니다. 마태복음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4:21 약속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

주님사랑 판단성구 [교인인가, 크리스찬인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온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궁금히 여기며 관계맺고 그 뜻을 알고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해 뜻을 알게 하시며 또한 동시에 각 사람이 그 말씀들을 읽고 스스로의 마음에 새기는 순간을 판단하실 수 있는, 주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읽어 알고 있는 자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른바 말도 않되는 사회적 정서나 자기유익 추구적 마음씀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는, 구절들을 번역 노출되어지게 하고 계십니다. 필자는 이러한 성경구절들을 주님에 대한 사랑 판단성구라 이름붙여봅니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고린도전서 7:22-24과 디모데전서 6:1-2의 말씀을 읽는 순간 "반면지시로 받게 되어있는 하나님사랑하는 크리스찬과 자기유익추구의 사회적 교인"을 분명히 드러내어 스스로..

크리스찬 사랑의지는 어떻게 알수 있을까? [요 14:21]

믿을 수 있나, 없나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요? Free Will and Determinism 자유의지와 결정론으로 알려져 있는 사유, 생각, 생활방식에 대한 판단법의 핵심점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면 됩니다. 결정론적인 사람은 전혀 믿을 수 없고, 오직 자유의지의 사람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 아실 겁니다. 상황 조건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여 사는 사람은 동물과 다른 점이 없고, 오직 자기 의지를 따라 사는 사람은 상황 조건으로부터 오는 이익이나 불이익 또는 손해를 떠나 스스로의 다짐이나 타인과의 약속을 꼭 지켜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Christian Love Will 크리스찬의 사랑의지는 이런 측면에서 자신의 하나님사랑을 스스로 판단해 볼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주님 앞에 사니 할 수 없는 말 [마 5:34-37]

크리스찬으로서 주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의식하며 살아가노라면,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아는 고로 할 수 없는 말 또는 대답할 수 없는 말이 있게 됩니다. 살아가며 마땅히 각오가 되어 있는 바 일지라도 그걸 물어오면 대답할 수가 없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이 "주님 앞이라! I'm before the Lord Jesus!"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 또는 인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하지! 이렇게 말하고 싶으나, 주님 앞이라 그럴 수 없습니다. 필자는 그럴때 "난 주님의 피조물 중 하나 일뿐인데, 내가 뭘 안다고, 능력 있다고, 내 힘으로 사나? 주님께서 내 생명 모두 갖고 계신데!"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잠잠할 수 밖에 없지요! 크리스찬이라면 절대 피조물로서는 묻거나 대답할 수 없는..

주님사랑인가, 주님것 사랑인가? [마 20:23, 요 19:26-27]

사랑은 몸과 마음과 의지, 전인적인 배타적 한 몸됨을 통하여 인생을 창조해 나갑니다. 둘 같으나 하나가 될때, 과정을 통과하며 마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의지로 사랑을 결심해 나갑니다. 항상 자기와 하나나 다름없이 된 그 다른 몸과 마음과 의지가 자기 사랑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지금 그 상대의 사랑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될때, 미래의 사랑을 결단하게 됩니다. 미래의 사랑을 위해 현재의 몸과 마음과 의지를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게 전인적 몸이 중심이 된 사람의 사랑을 통한 인생 로드맵인듯 합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 요한은 자기 어머니 살로메의 이끌림에 의해 자기 형제 중 같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께 향한 자기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되었었습니다. 미래의 사랑을 위한 ..

예수님의 이방인, 그길 아니라 하신다 [마 12:18]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때 지시하신 이방인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제자 마태는 복음서 속에서 자세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9-21, 이사야 42:1-4. 마태복음 12:9-21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

크리스찬 믿음 점검표 [예수님의 성구, 바울의 이해]

바울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기초로 (1)크리스찬의 자기 마음씀과 (2)주님의 긍휼베푸심을 알수 있다는 믿음 점검점을 데살로니가후서 3:3에서 말합니다. "주는 미쁘사 [또는 믿을 수 있으시니]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The Lord is faithful; he will strengthen you and guard you from the evil one." 바울의 데살로니가후서 3:3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한복음 17:15에 대한 체험적 확인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선과 악의 구별점과 하나님의 뜻을 동일시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선악을 언급하고 있다고..

불법인가, 지혜인가? [살전 4:2, 8]

바울서간에 대한 한국 크리스찬 설교자들의 오해가 (1)한국어 번역의 잘못된 언어조탁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 체험적 기초 위에 작성된 (2)바울의 계시의존적 진술내용을 그 전거 없이 즉 계시없는 말씀으로서 해석하여 자기목적을 따라 일정 부분을 이용하려는 마음씀에 기인합니다. [언어조탁문제는 예건대, 데살로니가전서 3: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 Thessalonians 3:11 "Now may God himself, our Father, and our Lord Jesus direct our way to you," -- "예수는"이라는 표현을 "예수가"로 바꾸어 이해하면, 한국언어문화적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