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님께서 호세아 6:6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셔서 바리새인들에게 뭔뜻인지 배우라고 하신 내용이 마태복음 9:13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 그 개역한글판은 성경적 의미론아닌 유교적 의미론에 입각한 의역을 채택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이 심각하게 왜곡 인용되고 그 말씀의 의도도 가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개역한글판과 The New American Bible 비교
마태복음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Matthew 9:13 "Go and learn the meaning of the word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러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개역한글판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사가 아니고 긍휼'이라고 말할때 그 뜻은 어떻게 될까요? 제사는 Worship 예배 또는 유교적 제의 즉 사회문화정치종교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번역한 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유교적 기독교예배를 지칭하게 되고, 이를 거절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설교자들이 애써 회피해오게 된 성구가 되었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한국의 유교적 시각에서 은혜라는 말과 상호교차적 의미로, 성경의미를 모른채 매우 잘못 쓰여왔기 때문에, 사회문화정치종교적으로 강자의 정의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관점의 토대가 되어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사가 아니고 긍휼이라는 말은 예배형식이나 행위보다 예배내용 또는 의도나 마음씀이라는 의미인 것 처럼 인용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되어 지는 관계로, 예배보다 예배드리는 마음씀을 강조한다고 해 온 것 입니다.
(2)마태복음 9:13에 의하면, 예수님의 호세아 6:6 인용은 의미론적 표현입니다.
Matthew 9:13 "Go and learn the meaning of the word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러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Hosea 6:6 "For it is love that I desire, not sacrifice, and knowledge of God rather than holocausts.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고 희생이 아니며 번제보다 하나님지식이기 때문이니라."
LOVE = MERCY 사랑 = 자비 또는 긍휼
SACRIFICE = THE LACK OF KNOWLEDGE OF GOD 희생 = 하나님지식결핍
(3)어떤 이유로 우리 주님께서 호세아 6:6말씀 love = mercy 사랑 = 자비 또는 긍휼로 사용하시고, 또 sacrifice = the lack of knowledge of God 희생 = 하나님지식결핍 또는 하나님지식이 없는 것이라 사용하시는지를 살펴봅니다.
Hosea 6:4-11
What can I do with you, Ephraim? What can I do with you, Judah? Your piety is like a morning cloud, like the dew that early passes away. For this reason I smote them through the prophets, I slew them by the words of my mouth; For it is love that I desire, not sacrifice, and knowledge of God rather than holocauses. But they, in their land, violated the covenant; there they were untrue to me. Gilead is a city of evildoers, tracked with blood. As brigands ambush a man, a band of priests slay on the way to Shechem, committing monstrous crime. In the house of Israel I have seen a horrible thing: there harlotry is found in Ephraim, Israel is defiled. For you also, O Judas, a harvest has been appinted.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경건이] 아침 구름[같고 일찍]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이런 이유로] 내가 선지자들[을 통해]저희를 [강타했었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라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고 희생이 아니며] 번제보다 하나님[지식이기 때문이니라] 저희는 [자기들 땅에서] 언약을 [침해했었고] 거기서 내게 [불성실]하였느니라 길르앗은 행악자의 [성]이라 피 발자취가 [남았]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엄청난 범죄를 저질럿]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매춘]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유다여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주님께서 긍휼 또는 자비를 욕구하시지 희생이 아니라하셨을때, 희생 = 희생시킴 곧 힘센 유대인에 의한 약한 유대인 착취와 죄인명명, 성직자들의 성전 또는 하나님말씀 이용을 통한 유대인 착취와 성전 시장화의 원인 동기 또는 이유가 되고 있는 현실 때문이고, 하나님의 사랑 또는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피조물을 불쌍히 여기셔서 문제를 일단락 시켜주시는 긍휼 또는 자비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1:12-14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라]."
하나님사랑을 희생이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 또는 하나님지식이 없는 것 입니다.
(4)현재적 희생이 희생을 이유로 장래 군림하게 되는 현실연결점을 아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이 희생이어서는 않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도움을 주는 긍휼 자비 곧 섬김이어야 한다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말씀은 마태복음 20:20-28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20:20-28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리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께서 긍휼을 욕구하시면 그 긍휼을 받은 크리스찬은 긍휼을 욕구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긍휼의 사랑이시며, 주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찬의 사랑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긍휼의 사랑으로 인해 긍휼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도록 하시는 주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과 평안케 하심과 보호하심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1, 27, 17:15.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건 희생의 사랑이 아니라 긍휼 또는 자비의 사랑이라 말씀하신 이유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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