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7-9은, 아내와 남편에게, 어떤 지혜가 주님 사랑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지 생각케 하는 사회적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아브람(아브라함)은 아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 (창 5:2)으로서 자기 아닌 자녀 또는 후손을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적으로 받아들일때 예상될 수 있는 부부위기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릎 쓰는 결정을 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아브람은 이후로 아내의 미모로 인한 생명의 위기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하여 비겁한 언어사용을 계획하여 진행하다가 두 번씩이나 아내를 빼앗겼다 도로 찾게 됩니다. 그 일들로 인해 재산을 얻고, 욕을 먹습니다. 아브람이 예상되는 생명의 위기를 무릎쓰고 결단한 이유를 성경은 자기나 자기 아내의 생명이 아닌 (1)자손의 일로 인함이라 말합니다.
많은 여성들 또는 아내들이 저 아브람(아브라함)의 비겁함에 기겁을 합니다. 자기 아내도 지키지 못하고, 자기 살겠다고 아내를 아내라 부르지 못하다니! 과연 하나님의 뜻이 아브람(아브라함)에게 저런 처참한 인생경험을 주시기 위함이셨을까? 생존상황을 통해 거주지를 옮기게 하시려는 게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아브람(아브라함)이 보여 주는 것처럼 강자 앞에 약자는 한 없이 나약할수 있으나, 오늘 사회적 악행과 각종 폭행과 남의 사람 빼앗기 경쟁터 같은 삶의 정황 속에서 크리스찬은 어떻게 자기 사람됨 (창 5:2)을 지켜 나갈 수 있고, 또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역대하 25:4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율법 책에 기록한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는]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덕 있는 자의 덕]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마태복음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게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하게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자."
성경을 통해 분명해 지는 점은 부부는 한 사람(창 5:2)으로서 (1)자손과 별개로 생각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2:24에서 분명히 정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내나 남편은 하나님뜻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회적 생존 상황 속에서 아브람(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된 뜻을 시인하지 못했었습니다. 아내나 남편 아닌, (1)자손이나 (2)부모는 별개의 사회적 단위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이 세상 생명통치를 하고 계십니다. 필자는 이를 "개인별 생명통치론"이라 부르며, 그 근거말씀은 위에 언급된 바와같이 역대하 25:4, 에스겔 18:20, 요한계시록 22:11과 마태복음 10:32-33로 받습니다. 이런 의미로, 아브람(아브라함)은 당시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을 것이나, 크리스찬된 필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아브람(아브라함)과 같은 사회적 위기를 무릎쓰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손은 부부의 생명위기를 무릎써야 할 결단의 상황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0:20-21에는 "개인별 생명통치론"의 관점에서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할 한 상황을 예언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홀로된 아버지나 어머니가 고난을 무릎쓰고 (1)자손을 위해 헌신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성공한 자손으로부터 버림받게 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한다면 아브람(아브라함)처럼 사회적 거래관계의 위험을 무릎쓰지 않고도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 상황으로 읽어야 할 말씀이 바로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23:28. "개인별 생명통치론"의 관점에서 받아야만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찬, 자기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는 자, 자기 식구를 사랑하는 자, 그 사랑은 물만 먹고도 살게 하시는 우리 주님의 긍휼을 체험케 하시는 과정으로 이끄십니다. 요한복음 2:9 포도주된 물, 4:14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샘. 누군가 돕겠다면서 식구들을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절하십시오! 사회적 악행과 폭행과 남의 사람을 빼앗는 이 시대에도 반드시 자기 사랑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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