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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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의 죽음에 대한 태도

신명기6장7절 2020. 1. 28. 12:58

크리스찬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크게 이중적인 의미이해로부터 결정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생 신호주심에 대한 안심과 허전함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구별되게 하시는 계시주심에 대한 감사와 아픔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크리스찬에게 체험케 하시는 경우와 꼭 같은 상황을 겪게 하시는 유대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성경에서는 이미 우리에게 이렇게 정리해 알려 주고 계십니다.

 

     에스겔 24:17-18, 바벨론 포로로 많은 유대인들과 함께 잡혀 갔던 제사장 에스겔은 갑자기 아내를 데려갈터이나 슬퍼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자기 아내는 하나님께서 이 유한한 생명의 세상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하늘 나라로 옮겨 가시지만, 홀로 남겨지게 되는 자신의 처지, 그 허전함을 슬퍼하지 말라 하시는 명령이십니다. New American Bible 번역, "죽은 자를 위하여 종용히 탄식하며 슬퍼하지 말고 너의 터반을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그 관습의 빵을 먹지 말라 하셨다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그 다음날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였다."

 

     마태복음 8:21-22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아버지 죽음 소식을 접한 제자에게 부친장례에 참여치 말고 예수님께서 행케 하시는 일을 따를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좇으라 하시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직업적으로 예수님의 제자 일을 하기 원한다는 서기관에게는 세상으로 돌아가 원하는 대로 살라 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에게는 세상 사회문화적인 관습에 따라 장례절차를 따르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누구든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세상과 달리 지시주심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세상으로부터의 비난과 오해 가능성을 넘어서게 하십니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사람의 죽음이 이 유한한 세상으로부터 영원한 하늘 나라로 옮겨지는 사건이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결코 이 세상 장례에 깊은 의미를 둘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 그 육체의 흔적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고, 썩지 않는 육체와 썩지 않는 영원한 영혼의 호흡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창조되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느니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5:51-52 참고.
     크리스찬 중에 세상 장례식을 통해 어떤 유익을 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성경 예언을 주목하여 자기 생각을 돌이키고 죽음에 대한 세속적인 태도를 버릴 기회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9:38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 장례식을 위해 행한 행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 비밀히 행동]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세상에 속한 많은 설교자와 교인들이 이 장면을 오해하고 있는데, 이사야 53:9을 통해 미리 예언 주신대로 아리마대 요셉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결코 기쁘게 판단치 않으신다는 점을 깨닫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그는 강포[= 잘못]을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 [= 거짓]이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죽은 후에]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통해 자기 유익을 추구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흔적을 이용한 것이니 악한 부자일뿐입니다.
     누가복음 20:38말씀처럼, 사람의 죽음은 이 유한한 생명의 세계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하늘 나라로 이동하는 사건을 말합니다. 크리스찬은 이 점에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다 먼저 소천한 사람의 흔적 앞에서 사회문화적 장례관습에 의해 야기될수 있는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우리로서는 알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수 있습니다. 문학적인 성경표현으로 인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크리스찬에게 믿음 생활에 유익한, 예수님의 크리스찬의 죽음에 대한 말씀들과 사건을 정리해봅니다.
     (1)창세기 5:23-24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365년을 살다 죽어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로 옮겨 갔다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요한복음 3:13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예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가장 쉬운 이해방식 중 하나는 에녹은 분명 하늘 나라 어딘가에 갔을 것이라는 죽음에 대한 현상적 문학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2)창세기 25:7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되어 있습니다. 175년을 산 아브라함이 죽어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로 옮겨 갔다는 종교 문학적 표현입니다. 누가복음 16:22에는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지 오래된 아브라함이 천사들과 함께 하늘 나라에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니라."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 세상 거지였던 나사로의 죽음을 받을수 있도록 하늘 나라에 지금 살아 있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3)신명기 34:7에는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2:11은 엘리야가 승천했다고 전합니다. "두 사람 [= 엘리야와 엘리사]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리]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마태복음 17:3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살아 나타난 두 선지자, 120세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었다." 사람의 유한한 생명을 영원한 하늘 나라 생명으로 옮기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흙으로 빚어 모세와 엘리야를 새롭게 창조하여 예수님께 특별지시하심 곧 Exodus [별세, 세상을 떠남]에 대한 신호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죽음 이후 영생의 생명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분명해 지는 때는, 그것이 영벌이거나 영생이거나 간에, 우리 주 예수님의 하늘 구름타고 나타나실때 [마태복음 24:30, 공중재림때]라 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 차례 깨달을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처럼 주 하나님은 뜻에 따라 언제고 개개인의 생명에 그 자비로우신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죽음 앞에서 생명통치의 주 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지시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준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