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는 말에 대해 적어도 두 단계의 생활세계적 접근과 해석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 밖, 이 지상의 교회에 갇혀살게 될뿐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산다는 건 무슨 뜻인가? 삶의 주체가 본받는 사람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위 이신론을 전제한 설교로서 이러한 자기욕망 꿈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도록 촉진한 인물 중에 Thomas a Kempis 토마스아켐피스와 그의 “The Imitation of Christ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있다.
교회 밖,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표현은 교회중심의 생활세계로 관심을 돌리고 초청하는 말이 될수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 교회중심의 생활세계를 구축하여!
그리스도가 교회 설교자의 영향력아래 다양한 언어를 입는다. 그 공통적 핵심은 뭔가? 교회 공동체의 욕망과 꿈을 따라 교회건물을 증축 또는 건축하고, 한국문화를 선교의 이름으로 전하며 우월감의 영광을 누리며, 더욱 자기욕망과 꿈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교회연관에 따라 시각화하고자 한다. 이때 삶의 주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문화의 옷을 입은 명목상 크리스찬의 공동체가 아닌가?
교회 내, 예수님이름 사용자들의 집단이기주의, 공동체적 정의론, 물질중심의 권력과 위계관계, 이 모든 것들이 오늘 한국교회의 깊은 중심에서부터 흘러 나오고 있다. 불가지론적 신관과 공동체정의론에 정초된 생활세계를 가진 무슬림들의 이슬람신학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자는 한국 교인들의 생활세계적 배경 신학의 토대가 가깝지 않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토마스아켐피스라는 사람과 그의 문제적 저작 때문이라기보다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신뢰가 한 원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번역을 대할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사태를 키워왔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주체적 삶이 오늘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대신 유한한 기회의 생활세계를 갖게 했다는 성경 말씀을 읽고도 어떻게 사람이 주체적인 본받음으로서 하나님을 (하나님나라를) 바라볼 수 있다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 교인들의 입장에서, 이 지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1:1이다. “내가 그리스도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의 말에 대한 저 한글번역은 영문번역 “Be imitators of me, as I am of Christ.”과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오역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것 (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인것같이 나를 본받는자들이 되라.”를 본받는
무슨 뜻인가? 바울이 그리스도의 것이 된 것은 그에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1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바울에게 나타내 주셔서 그 일로 자기가 예수님께서 받아주신 자 된 사실을 알게 된 그것을 말한다. 바울을 본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계명으로 받아 가지고 살아가는 예수님사랑을 실천하는 걸 의미한다.
또 다른 곳, 로마서 15:5도 마찬가지의 오역이 발견된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영문번역, “May the God of endurance and encouragement grant you to think in harmony with one another, in keeping with Christ Jesus.”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하여 서로 생각을 같게 하여 주사”로 번역되어야 옳다.를 본받아
우리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이시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셔야 하므로, 사람이 본받는다는 표현은 근본적으로 받아 들여 질수가 없다. 자기 마음속 결단이나 교회의 결정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자기욕망 꿈을 펼쳐나가서는 않된다는 사실을 아는 크리스찬과 아무 생각없이 꿈과 욕망을 위해 예수님 이름을 사용하며 사는 명목상 크리스찬 사이의 근본적인 간극이 바로 이 말씀에 대한 태도에서 발견된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지시하시거나 보여주시거나 말씀하신 일 없이, 달리 말하자면 주님께 받은것 없이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무엇 또는 누구를, 혹 하나님을 또는 주님을 본받아 산다고 말하는 자는 명목상 크리스찬일뿐이요, 불법이라는 예수님의 지적을 깊이 생각해 봐야만 한다. 마태복음 7:23.
본받지 않고 받은대로 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사람의 중심을 살피셔서 지금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모든 일을 허락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크리스찬의 저 모토가 근거 있음을 보자. 예레미야 23:28 영문번역 New American Bible을 새롭게 번역해 본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꿈꾼 선지자는 자기꿈을 말하게 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밀집과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다시 한번 저 모토가 크리스찬에게옳음을 확인시켜 주신다. 요한계시록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하게 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자.”
본받지 않고 받은대로 살다! 한국 크리스찬의 새로운 자기부정적 생활세계를 열어 주시는 주님의 긍휼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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