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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궁금해 하는 예수님 자신의 공중재림-세상멸망-천국인도하심 직전의 징조에 대해 답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3-4, 28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속임]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오늘 우리 크리스찬에게 예수님께서 주의하라 하시는 촛점은 사람들을 속이는 대형교회 곧 독수리목사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하시기 직전의 징조로서 대형교회의 세력지향목사들의 출현을 언급하신 점을 기억해야합니다.
사기를 당하는 걸 보게 되면 교회출석을 꺼리게 되는 건 교회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세력지향성을 목사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독수리목사와 이에 동조하거나 이를 통하여 생존세계를 구축하려는 교인들의 공동체주의가 예수님께서 크리스찬에게 미리 말씀하여 주의시켜 주신 공중재림의 징조현상 중 한 측면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무관심한채 자기 생존을 제일로 여기는데서 발생하는 문제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미리 알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이 무엇인지 직접적인 지시하심이 있기까지 어떤 행동을 취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이사야 51:1-3.
세상 생존제일주의자의 특징은 미리 보여주신 하나님의 꿈을 자기유익을 위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사용합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 세상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의 법칙 또는 하와-아담처럼 뱀 곧 짐승의 형상으로 바꾸고 맙니다. 이 세상으로 추방되어온 짐승의 형상 흔적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계시다는 꿈을 수 차례 꾸게 하시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찾고 그것을 지우려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을 영원히 뵐수 없게 되고 만다는 냉정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은 수 차례 하나님께서 꿈꾸게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나타내시는 비전이나 말씀이나 지시하심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셨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언급할뿐 그의 마음과 삶은 자기의 짐승형상에 의해 작동됐습니다.
창세기 41:16, 32, 36, 47:25-2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바로께서 꿈을 두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요셉이 하나님의 꿈을 통해 행한 일이란, 자기 생존과 애굽 왕에 대한 섬김, 애굽 사람들의 종삼음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용하여 짐승의 형상을 숭배한 외에 다름아닙니다. 하나님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의 징조는 바로 저 짐승같은 생존현실에 섞이지 않도록 크리스찬이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주목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치적 관계와 공동체주의의 핵심은 사람을 속이는 일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용합니다.
크리스찬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로서, 짐승에게 경배하는 정치적인 거래와 세력의 밥이 되는 공동체주의에서 빠져 나올수 있도록 해 주시는 예수님의 비전 말씀 지시하심을 체험케됩니다. 요한복음 14:21. 곧 생명책의 사람되게 해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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