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신앙의 새 발견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씀을 시각화합니다! 자세히보기

하나님사랑/크리스찬심사표

사람말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격언 속담 받지 말라]

신명기6장7절 2019. 11. 11. 14:08

***

인생의 어려움과 한계상황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왔으나, 실상은 교회 사람들에게서 아주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신기한 단어들,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수준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자기 스스로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성경을 꼼꼼히 읽고 주님뜻을 찾는 일이 먼저인데, 이러저러한 모임과 활동 참여를 우선하는 교회 현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무시한채 사람들에 대해서 또는 사람들의 수준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될수 있습니다. 다 그런데 뭐! 나만 그런게 아니잖아, 괜찮겠지! 같이 길 잃고 살다, 불못 들어가는데 뭐가 괜찮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 드나드는 유대인들에게서 발견하셨던 그 현장 속에, 어느샌가 자기 자신도 거기에 섞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5:39-40. 필자가 이슬람신학적 공동체주의 또는 이신론적 공동체정의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잘못된 신앙생활의 근본토대 문제 때문입니다. 이슬람신학은 신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십니다. 계시하십니다. 이신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뿐 통치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온 피조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공동체주의나 공동체정의론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이 중심에 있습니다. 크리스찬이 주님을 찾아야지, 왜 사람들을 찾습니까? 이런 상황이 되니 그 내면을 스스로 살펴 보면 알겠지만, 예수님의 이 판단을 피할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한복음 5:42.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끼리끼리 집단이익 찾는 일이 우선이 된 상황입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4.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집단종교현상의 근본에 사람 생각에 기대려는 경향성이 있음을 지적하신바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 또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생각을 찾아 의존된 삶,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려는 태도의 문제를 말입니다. 갈릴리 나사렛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사용하신 표현은 "속담"이었습니다. 고향 유대인들에게 격언 속담을 경계해야 함을 지적하셨었는데, 사람의 생각과 사단의 생각을 동일시하신 예수님의 표현 속에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마태복음 16:23의 영어번역을 참고바랍니다. 나사렛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속담에 경도되지 말아야만 주님의 기적을 볼수 있다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누가복음 4:23-27.

 

     사람들을 찾아 그 속에 섞여 살고자 하는 사람이나 사람의 속담과 격언을 찾는 사람에 대한 주님 경계의 핵심은 그같은 생활자세가 하나님체험의 신비를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선상에서, 주님께서 아직까지 자기에게 어떤 말씀 비전 약속도 주신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의 말씀 중 자기꿈과 연결되는 성구를 속담처럼 받아들여 살아가려는 태도도 그리고 온 교회가 한해 표어를 정해 놓고 그걸 의지해서 행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살아계신 하나님 뵙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는 요인이 됩니다. 한국교회 내에서는 이런 문제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주님을 찾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 생각으로부터 이해될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실때만 알수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자기에게만 특별하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비전 약속이 있으십니까? 깨닫는 바가 더디므로 답답할지라도 오직 주님께만 묻고 성경을 읽고 주님 주시는 신호를 따라 스스로 결단해 나가야 옳습니다. 주님뜻을 찾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렙다의 과부처럼 선지자를 만났습니까? 시돈 땅의 과부들이나 이스라엘의 과부들을 찾아가 어찌하면 좋으냐고 물은들 그들에게 응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코가 석자인 사람들에게 행복에 겨워 자랑하는 소리로 들려 곤욕을 치르게 될뿐입니다. 문둥병든 나아만처럼 선지자를 찾았습니까? 이스라엘 문둥병자들을 찾아가 선지자의 기적을 봤느냐고 묻는다면 도리어 그 기회를 가로채려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당신 개인에게만 주신 특별한 신비를 왜 주님께 묻지 않고 세상 사람들 의견을 구하려 하십니까? 사람이 중심이라는 공동체주의, 교회주의를 표방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자들에게 속임을 당하여 명목상 크리스찬으로 끝나고자 하십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약속대로 각 사람을 각각에게 맞게 직접 이끄십니다. 요한복음 14:21, 요한계시록 22:11.
     사람이 사람을 찾거나 속담 격언을 찾는 건 무지 즉 배움에 대한 부족때문입니다. 성경의 어떤 인물에 대한 이해력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씀의 뜻을 구하고 실천할 길을 찾아가며 오직 하나님께 배워야 옳습니다. 이때 주신걸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