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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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의 졸업식 [예수님을 보자! 계 4:10-11, 마 6:1]

신명기6장7절 2019. 2. 10. 07:44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그 의도와 목적을 따라 나누면 크게 두 부류 중 한 곳에 속할 것 입니다. 다들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기 자신의 생활태도와 가치관을 따져보면 천국은 거저 먹고 이왕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하는데 좀 멋지게 살아보자는 이 세상문제해결과 성취에 더 큰 비중을 둔 사람들 속에 속하는 사람들, 이 명목상 크리스찬의 시기를 넘어서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사셨던 방식을 따라 살아보려고 하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둔 사람들로 분류되어 집니다. 전자는 자기욕망과 자기꿈을 성취하기 위한 정치적 동기로 교회를 찾아 온 사람들과 현실을 적극 활용하여 정치력을 신장시키려는 사람들이 속하겠고, 후자는 인간의 한계상황 인식과, 현실적 사회문화 향유보다 더 근본적인 안정감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속할 것 입니다. 양자의 차이는 마음씀이 일차적인 요인이요 상황에 대한 문제해결적 태도가 부차적인 요인으로서 어떻게 바라봐 지고 있는가를 통해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필자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졸업식이라는 말은 학교졸업식뿐 아니라 결혼식이나 왕자의 왕위즉위식 등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예식을 다 포함합니다. 졸업식을 서양에서 COMMENCEMENT 커멘스먼트, 시작이라하죠! 어떤 사람은 졸업식에 온 가족이나 친척들까지 참석하고 식사도 함께하며 즐길 여유가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순간에도 일터를 떠날 형편이 않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는 졸업식을 세상사람들과 꼭 마찬가지 방식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 이요, 후자는 졸업에 대한 의미는 같으나 세상사회문화적 즐거움아닌 내적 성취에 대한 현실적 가치를 따져보게 될 것 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들여 사회문화적인 결혼이미지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요, 어떤 사람들은 결혼의미에 대한 내적 충족감과 감사가 전부인 경우도 있을 것 입니다. 두 경우 다, 전자는 이 세상에서 졸업식과 결혼식의 의미를 현실화할 수 있겠지만, 후자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약속의미를 새겨보게 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1. 사람이 사회문화적인 생활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명목상 크리스찬과 크리스찬을 갈라 놓는다는 말씀입니다. 졸업식에 적당한 향유를 할 수 있는 상황, 물질과 시간도 있고 남들 즉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생활세계적 참여를 원한다면, 크리스찬됨보다 현실에 더 민감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렇다면 명목상 크리스찬되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는 일에 더 민감하니,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상이 없겠죠! 명목상 크리스찬의 기간은 짧을 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졸업식에 참여하여 향유할 형편 못되는 상황이 주 하나님의 축복인 셈이죠! 학교졸업식에도 결혼식도 변변한 수준으로 맞춰 보려는 시도대신 그 다음 일 곧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을 향해 마음을 쓰게되고, 주님 바라보며 스르르 눈물흘리는 자신을 발견할때 주님의 치료의 광선이 있는 눈물을 체험하는 기회가 있게 될 것 입니다. 이 일을 겪고 난 후에야만 형편을 넉넉히 해 주신다해도 스스로 세상 사회문화적 졸업식을 흉내내거나 향유하는 일로부터 의식적으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말라기 4:2.


     주님을 바라보는크리스찬은 학교졸업식이나 결혼식이나 어떤 교회임직식 때에 주님의 뜻에서 멀어질까 조심할 것 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보다 더 큰 분 곧 "예수님의 졸업식을 살펴보니 그럴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5병2어 양식공급을 통해 이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왕의 능력을 충분히 가지신 걸 입증하셨기에,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이 세상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왕위즉위식을 가질 수 있었지만 물리치시고, 이 세상 마지막 순간을 떠 올리시며 나귀새끼를 올라타 놀림당할만한 수준으로 왕되심의 내적 의미만을 소수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시면류관 쓰신 왕이라는 조롱을 당하셨을 뿐, 졸업식을 제대로 하신 적이 없으시죠! 요한복음 6:15, 마가복음 11:7, 마태복음 27:29. (교회임직식에 많은 걸 걸고 사회문화적인 권력 향유에 눈먼 교회행사는 주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을 깨닫고 현장을 새롭게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졸업식 장면, 이 세상이 아니라, 저 하나님나라, 천국에서 펼쳐진 예수님의 졸업식 곧 왕위즉위식을 사도 요한에게 보게 해 주시고 우리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음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4:10-11.


     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양만큼 물질도 생활환경도 받고 산다고 믿는 모든 크리스찬에게, 우리 주 예수님의 천국에서의 졸업식 또는 왕위즉위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졸업식을 조용히 의미만 새기셨던 우리 주님처럼 크리스찬도 그러해야만 옳습니다. 저 장로들의 공통점은 주님만을 중심에 사랑하여 금면류관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점입니다. 베드로에게 초대교회임직식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은 주님의 축복, 맞죠? 이 세상에서 정치활동에 참여했던 다니엘도 일찌기 저와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받았었습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다니엘 7:16-17. 이 세상 왕은 짐승일뿐이라는 사실, 이를 깨닫게 된 다니엘이 짐승경배현장과 같은 정계를 은퇴하죠! 천국에서 졸업식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 원하는 크리스찬이신가요? 크리스찬의 졸업식이 이 세상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의미만 새기는 순간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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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5병2어 기적을 통한 왕의 능력입증]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한 지상적 왕의 희극적 의미부여]


[예수님의 가나에서의 결혼식의 의미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