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신앙의 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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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 변화됐나? [마 18:33, 말 3:17]

신명기6장7절 2019. 2. 9. 09:38


사랑하면, 사랑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관찰 목격하게 됩니다. 이 사랑이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변화시키는 지는 알 수도 없고, 그 변화에 따라 자기 사랑이 힘이 있다고 말 할수도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기의 사랑이 자기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나타나도록 하지, 결코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변화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폭력 VIOLENCE 바이오런스로 오해하지는 않는다! 이 폭력을 사랑으로 오해하기 시작한 역사는 창세기 3:1-6에 나옵니다. 뱀 = 짐승의 약육강식 자연법칙적 좋고나쁨에 대한 타락한 인간의 지적 오해는 사랑을 자기 자신의 변화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변화 욕망의 성취 또는 정복으로서 받아 들이기 시작하여 이 세상으로 추방되었다는게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십니다.


     사랑하면 타자를 변회시킬 수 있다! 이런 오해의 지점은 크리스찬과 명목상 크리스찬의 갈라짐을 분명하게 해 줍니다. 뭔 소리인가? 많은 설교자들의 불신앙과 사회문화적으로 잘못 경도된 자연법적 또는 정치적 심성에 기초된 성경해석은 저와 같은 뱀 = 짐승의 교훈을 받습니다. 이와 같은 명목상 크리스찬 설교자들을 통해 한국교회에 전해져 온 한 예를 봅니다. 이른바 어거스틴과 그의 어머니 모니카 스토리죠! 모니카의 아들사랑의 힘이 어거스틴을 성자의 반열에 까지 이르게 했다! 이렇게 설교하는 자들의 의도와 함축은 뭘까요? 사랑은 자기 변화보다 타자 변화가 중요하다는 거죠!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라는 정치수사 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 없는 변화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42.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인과 악인이 함께 있다 하셨고, 각 사람의 마음씀을 보시고 심사하시며, 폭력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살도록 강제로 사랑하지 않으시는데, 저 사랑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죠! 변화는 누구의 변화겠습니까? 하나님의 변화일 수 있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변화를 말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그 사람이 스스로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 목격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거래로 보지마라! 세관원처럼 목적에 맞게 사랑 거래하려느냐? 마태복음 5:46.


     예수님께서 천국을 자기 종들과 회계하는 임금과 같다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천국자리 배정을 위한 각 사람 마음씀 심사의 포인트를 미리 가르쳐 주신 것 입니다. 동정함을 받은 종이 자기보다 약자인 또 다른 종에게 전혀 동정함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주님께서는 악하다는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동정함 = 사랑함, 종이 임금을 사랑한다면, 자기 마음씀의 변화를 읽게 됩니다. 스스로를 관찰 목격하면서 알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저 동정함 = 사랑함을 받은 종은 자신의 사랑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켰는지 살펴 보지 않고, 임금의 마음을 변화시켰다고 성공했다고 오해합니다. 모니카의 사랑의 힘이 어거스틴을 변화시킨게 맞다고 오해하는 것과 같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사람이 가로챕니까? 약자의 변화는 강자인 자기를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라 잘못 말하고, 강자의 변화는 약자인 자기 사랑에 힘이 있다는 증거라 말합니까? 마태복음 18:23-34, 말라기 3:17.


     주님은, "사랑하니 변화됐나"를 물으신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등 들고선 신부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각자 자기 등이 있습니다. 등 = 사랑의 마음씀이라고 보면,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가 자기 자신의 마음씀에 변화가 일어나는 지를 스스로 관찰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신랑을 자기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뭔가 하는 게 아니고,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키야 겠죠! 예수님께서는, 미련한 신부가 자기 등 = 사랑함이 부족해서 또는 없어서 신랑을 볼 수 없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가서 5장 2, 6, 8은 미련한 신부의 현실적인 사랑이 어떠한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랑을 사랑한게 아니고, 재물사랑 성공사랑을 기다려 오다가, 재물도 없고 성공도 못한듯 보이는 신랑을 떠나 보내고, 자신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를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말죠! 가룟 유다나 부자 청년과 꼭 마찬가지로, 물리적 가치에 따라 신랑 즉 타자를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오해하면, 비성경적인 가치관과 속담과 교훈을 가진 명목상 크리스찬으로서 사랑에 실패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니다. 마태복음 25:3, 요한복음 12:5, 마태복음 19:20.


     예수님께서 11제자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찬은 주님 말씀대로 사랑하는 중에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겠습니다. "사랑하니 변화됐나?" 어떻게 자신의 변화를 알 수 있을까요? 자기 마음씀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살펴 봐야 합니다. 사랑이 자신을 충분히 변화시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가야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마음의 변화 정도를 예수님 뵙는 인격적인 사랑 소망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아무리 늦더라도 소천 이전에, 이 세상을 떠나는 Exodus 엑소더스 직전이라도 그 신비한 쳐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14:21 예수님의 약속말씀대로, 슬기롭게 예비된 사랑의 변화를 등기름으로 가진 신부에게 그러실 거라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과 인격적인 사랑을 체험하는 크리스천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5:4, 10, 요한복음 13:14, 34.


[아래 그림의 출처를 확인하려면, 각 그림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폭력이된 사랑 Violent Love, 창세기 3:1-6

예수님의 크리스찬사랑 Christian Love, 요한복음 19: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