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 원수와 이웃 또는 친구, 단순한 분별력으로 사는 방법은 에너지의 소모가 적고 목적 성취에 아주 좋습니다. 자기꿈, 자기욕망, 자기중심의 계획을 따라, 실질적으로는 모든 것들을 목적달성 연관적으로 보게 됨으로서, 보통 사람들처럼 그때그때의 욕구 풍조에 따라 살아가고 싶은 유혹만 이길 수 있다면, 약자일지라도 성취를 경험케 합니다.
단순한 삶의 내용은 뭘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3-58.
사람은 각각의 특징이 있게 마련이죠! 힘이 약한 자, 강한 자, 지식이 많은 자, 없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살게 되는 자, 자기의 욕망대로 살게 놔 둠을 받는 자! 에너지가 적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비전과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상대적인 강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지켜나가야 할까요, 지켜 나가게 될까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이삭과 야곱의 얘기가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리브가의 태몽신탁 Birth Oracle,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쌍둥이에 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세기 25:23.
약자인 야곱은 어머니의 태몽신탁 내용을 따라 집안에서 가축길들이기, Domestic 도메스틱하며 살아갑니다. 창세기 25:27. 에너지 소모가 적고 효율적인 가축길들이기와 집안 양식관리를 해 나가죠! 창세기 25:29. 마음에 품고 사는 하나님말씀을 따라 자기소유를 사용합니다.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창세기 25:31. 야곱의 목적 곧 하나님말씀 의존적 삶의 현실은 뭐였나요? 이웃과 원수로 나누어진 가족관계, 리브가 엄마는 야곱의 편, 에서 형은 야곱을 원수로 생각합니다. 약자 야곱은 누구를 미워할 수가 없죠! 원수를 미워할 수 있는 위치는 강자일때 뿐입니다.
죽음의 위협을 통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을 기도의 기회로 갖기까지 야곱은 뭘 경험하고 살며 깨달았을까요? 창세기 27:45, 32:9, 24. 하나님께서 말씀과 비전을 주셔서 이끄시는 크리스찬의 길을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처럼 온전해지도록 하심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8. 바로 이 말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야곱이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32:1-2. 마하나임은 야곱의 명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뵌 명분!
하나님께서 비전, 말씀, 혹은 둘 다를 갑자기 주셨습니까? 마하나임은 야곱의 하나님마음 깨달음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뜻을 야곱은 이미 하나님뜻대로 살아가는 가운데 알게 되었습니다.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날이 너희에게] 사모하느뇨 [무엇이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아모스 5:18.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군대 두 진 = 마하나임을 보게 하신 사실을 주목했습니다. 흑백논리로 따지자면 앞선 곤란들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야곱이 모를 수가 없었겠죠! 저 마하나임 비전을 보고 기도하는 야곱 앞에 하나님의 군대와 전혀 견줄 수 없는 400인의 에서군대가 나타납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 종에게 맡[겼다]." 창세기 33:1.
야곱은 마하나임의 비전을 명분으로 저 400인을 맞이했습니다. 둘로 나누어져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통해 하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군과 적군, 야곱과 에서, 하늘과 땅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세기 32:28. 야곱의 이스라엘 개명은 하나님께서 야곱이 하나님뜻 가운데 행했음을 인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전과 말씀을 주시고 그대로 충실히 즉 단순하게 살아가게 하시면서 주시는 새로운 변화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기회를 갖게 해 주시는 마하나임 비전과 명분입니다. 크리스찬의 마하나임 명분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살아가며 갑자기 맞이하게 되었거나 맞이하게 될 예수님의 비전, 말씀에 대한 이해력의 기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겠습니다. 그 핵심은, 마태복음 5:48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자기 허약성으로부터 비전성취를 향해 분별력 있게 흑백 대결하여 나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나가는 하나님사랑, 하늘 하나님처럼 사랑의 기회를 갖도록 주변에 마음써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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