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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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신명기6장7절 2016. 9. 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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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기독교 신앙양심적 섬김해석]

 

하나님과 사람을 어떻게 섬기는가? 섬기는 자의 양심에 따라 각각 다른 이유와 결과로 나타난다는 게 성경의 말씀입니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Let them have dominion)하셨다. 하나님사람에게 주어진 섬김은 천국만물지배권이었습니다.

 

     25:27, 29-33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 (His Tents)에 거하니,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 [붉음 RED]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KJV, = 먼저 RSV/NAB]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KJV, = 먼저 RSV/NAB]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

 

     이 세상에서, 저 만물지배권은 두 방향으로 나누어 졌습니다. 에서는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상태 그대로를 배경으로 한 양심, 소위 우리가 말하는 사회문화적인 양심 (Socio-Cultural Conscience)에 의해 작동하는 만물지배권을 행사합니다. 이 사회문화적 양심을 가진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자체도 사회문화적 생존경쟁차원에서 그 힘에 의한 지배를 행사하기 (Socio-Cultural Dominion) 원하고 추구하며 삽니다.

 

     야곱은 자연법칙을 벗어난 본래적 인간의 양심, 즉 길들여진 동물들 (Domestic Animals)을 자기 장막 (His Tents)에서 키우고 지키며 함께하는 천상적인 양심 (Heavenly Conscience)에 의해 만물지배권을 작동시킵니다. 이 천상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대화에 의해 다스려지고 지배받기 (Faithful Dominion)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저 두 방향의 지배권적 섬김행사를 각각 이렇게 판단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 (Dominion)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 20:25-27) 에서의 저 사회문화적 양심이 작동하는 섬김행사는 이방군주의 힘의 지배론과 꼭 같다. 야곱의 저 천상적 양심에 기초된 대화의존적 섬김행사는 예수님께서 불어 넣어주시는 천국제자의 믿음지배론 또는 신앙지배론과 꼭 같다는 말씀입니다.

 

     , 예수님께서 불어 넣어주시는 천국지배권적 섬김의 뿌리가 되는 천상적 양심 또는 신앙양심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왜 천국의 지배권행사를 원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초사회문화적인 양심, 천상적인 양심, 또는 신앙양심을 갖고 훈련하며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아는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앚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19:28) 지금 이 세상이 아니라, 지금 저 천국의 지배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주권을 쥐신 예수님을 좇는 결과로 갖게 되는 신앙양심과 천국지배권적 섬김을 행사하고 살아가는 자여야 합니다. 자연상태의 사회문화적인 양심을 벗고 주님께서 주시는 신앙양심대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겠다는 결단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2)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Not to Be Served) 도리어 섬기려( To Serve)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20:28)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의 핵심은, 저 사회문화적인 양심에 매여 이방인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에서를 물리치기 위해 야곱이 한 말 "오늘날 [KJV, = 먼저 RSV/NAB] 형의 장자의 명분을내게 팔라"는 대화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회문화적 지배권행사를 예수님의 말씀에 뿌리둔 신앙양심으로 물리쳐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3)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그동안] 나사로는 [나쁜 것]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을 받느니라." ( 16:25) 온 인류의 양심을 심판하시는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말씀을 자기양심으로 갖고 산 아브라함의 입을 빌어 세상중심의 사회문화적 양심이 천국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신앙양심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지금 저 천국의 지배권적 섬김을 행하는 자라 말씀하십니다.

 

     주기도문은 "오늘날 (This Day/KJV/RSV, Today/NAB)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Our Daily Bread, = 내일 양식 Our Bread for the Morrow/RSV ]을 주옵소서"라 기도하게 이끕니다. ( 6:11) 오늘 우리가 구하는 양식은 이 세상양식인가 저 천국양식인가? 오늘을 사회문화적 양심으로 살아가는가, 오늘을 신앙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한 양식인가, 주님말씀대로 살아나가기 위한 양식인가?

 

     "너희는 먼저 (First)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으라, Seek]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6:33) 오늘과 먼저라는 말은 우리 각 사람의 양심의 거처 (Dwelling Places)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늘 또는 먼저 하나님나라의 지배권적 섬김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주시는 신앙양심을 따라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천국의 지배권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