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경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난과 고통의 의미를 곱씹게 됩니다. 세상 속에 고난과 고통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생명도 창조된 것 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놀라운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충격요법 (Shock Therapy, God heals a person through shocking experience)을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하나 뿐인 아들의 생명을 피조물의 것 처럼 이 세상에서 끝내게 하셨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이사야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이제 그 어떤 사람의 기도도 지구촌전체의 생명구원보다 앞설 수 없슴을 깨닫습니다. 이사야 28:22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 말라기 2: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이 땅에서 사명을 다한 생명은 천사처럼 그 소임 완수와 함께 자기를 보내신 분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야곱처럼 자기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음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조물일지라도 이제 마음으로 생명사랑을 이해합니다.
한 번의 사랑은 그것으로 도저히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고백으로 받아들입니다. 자동문처럼, 사랑은 이 세상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 사랑을 고장내는 것은 수명을 다한 고물문짝처럼 이 세상에서 쓸모가 없는 짓 입니다. 이 세상에서 본 어떤 것도 사랑을 모두 독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포장하고 확대하고 재생산해서 제 삼의 인간을 창조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 일 뿐입니다. 그게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권력생산자가 아닐지라도 그럴 수 있을까요?
살아 있는 생명을 사랑하는 것 만큼 이 세상의 미덕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은 생명사랑을 위한 기회의 문입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확대 재생산 포장 권력화하지 말고, 앞에 있는 사람, 함께 이 세상에 살아 숨쉬어야 할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 만큼 하나님의 생명구원의 지구촌시대를 잘 이해하는 길은 없을 것 입니다. 보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는 사랑, 영원한 하나님사랑을 깨닫게 되는 자의 현실입니다.
고난과 고통 중에 오는 선물은 하나님의 생명사랑을 곱씹어 보게 하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땅에 있스나 지구촌까지 올라가 보면, 마음의 평안이 옵니다. 할렐루야!
2012.07.29 13:04
'차목사n소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난과 고통을 넘어서는 하나님사랑 (0) | 2016.09.08 |
---|---|
사랑과 감사 (0) | 2016.09.08 |
결단의 때, 어떻게 아는가? [마 10:34-39] (0) | 2016.09.08 |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0) | 2016.09.08 |
다니엘의 식탁과 변화 (0) | 2016.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