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AT HOME AND ABROAD/ IN YOUR HOUSE 집에 않았을 때에든지 BUSY OR AT REST/ BY THE WAY AND LIE DOWN AND RISE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
창세기 1:1은 하나님께서 태초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제 1의 법! 하나님만 참되신 분이시다! 신명기 6:4-5은 제 1의 법을 믿는 자들이라면, 하나님 밖에는 사랑할 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 2의 법!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사랑하고 계시다, 그러니 그 피조물인 것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을 사랑으로 깨닫게 된다! 바울의 로마서 8:38-39말씀은 그가 하나님사랑이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 줍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도다.
신명기 6:7은 제 1의 법과 제 2의 법을 말하는 자의 위치를 말씀하십니다. 한 가정의 설교자, 한 교회의 설교자, 한 언어권의 설교자,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인이신 영혼의 설교자 [창세기 2:7 영혼 = 하나님호흡 = 시편 16:7 심장 = 생명통치의 주 하나님을 인정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려 허락해 주신 호흡대로 살고자하며 그 소망을 말하는자 = 몸마음영혼의 삶을 살아가며 말하는 인격적인 설교자. 공동체정신 = 종파교리를 말하는 정치이념론자 종파주의자의 정신주의와 구별 필요함]입니다.
로마서 5:13은 바울이 저 제 1의 법과 제 2의 법을 알고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법을 창세기 1:1 창조주 되심과 2:17 참된 기준이 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의 법과 동일시 하며, 율법을 사회적인 한 법과 동일시합니다. 온 세상의 통치주 되심을 인정한다는 뜻에서 율법은 사회문화국가적인 법과 차원을 같이한다고 보는 것이죠! 유대인의 율법!
창세기 9:13 무지개언약은 예컨대 율법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7:11 이혼한 부부 각 사람을 여전히 남편과 아내라 칭하는 바울의 유대교적 해석 또한 율법적 차원입니다. 율법은 각 사람에 대하여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바울서신 이해에 전제로 놓아야 옳은 이유입니다. 상대적이며 변경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율법에 대한 흔한 오해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2:29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마태복음 19:6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마태복음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9:17은 예수님께서 제 1법과 제 2법의 차원을 확인케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제 1법은 하나님만이 참되신 분이시다. 유일하신 분이시고, 선이시다. 이 때의 선은 타락한 사람의 지적 선과 차원을 달리하는 말씀입니다. 제 2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고 계시다. 각 사람에게 상대적인 통치를 통해 주시는 말씀들이 있으시고, 이를 듣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신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각 사람마다 상대적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통치현실성을 살아계신 분으로 깨달게 하시고 믿어 증인되게 하실때 전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꿈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은혜를 따라 자비하심을 구하며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이사야 30:18-22. 자기 꿈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아무리 높이려 한다해도 주님의 평가는 불법판정뿐 이랍니다. 마태복음 7:15-23. 주님말씀대로 살며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건 삶을 사는 가운데 에서만 살아계신 주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1. 그 이유는 우리 주님이 이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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