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의 노동에 대한 책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노동에 대한 심사 또는 심판을 근거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래 낙원의 아담과 하와가 좇겨나면서 부터 시작된 이 세상의 노동은 축복일 수 없으나 살아 있는 동안 피할수 없는 일상생활에 대한 개인책임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근본적인 노동관을 정리하여 사는 일은 예수님께서 지금 하고 계시는 재건되는 낙원 즉 하나님나라에 자리를 허락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와 연관이 깊은 인생 로드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창세기 3:17, 이사야 45:13, 요한복음 14:3.
우리 크리스찬 중에 매일매일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기도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태복음 6:11은 우리가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해서 우리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노동의 댓가를 떼이지 않고 받을 수 있게 해 주심으로서만 살아가게 되는 것이요 이로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님의 현실통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고백을 통해 매일매일 확인하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 각 크리스찬이 분명히 이해해야만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사역한 사람들의 자기노동에 대하여 불법이라 하셨고 도무지 우리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신 일을 자기들 마음대로 행한 일이라 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와 선교연관적 사역을 자기 마음대로 행해서는 절대 않되겠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7:15-23. 거짓 선지자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즉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적이 없는데, 스스로 주님을 뵈었다거나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자를 지칭합니다. 요한복음 14:21 예수님의 계시약속에 비추어 보면, 저런 자들의 핵심문제는 하나님사랑이 아닌 자기동기로 한 노동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노동의 책임을 따라 주님과 무관하다 판단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크리스찬에게 "나의 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지키는 자가 복되다, 지혜롭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24, 누가복음 11:28. 주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계시는 우리 각 크리스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주님께서 살펴 보시고 스스로를 나타내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4:21. 그러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지키는 일은 자동이됩니다. 핵심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마음쓰는 일이 아주 당연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교회와 선교사역에 참여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문제는 이 일을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는 주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21:13, 예레미야 7:11. 주님께서 그러한 상황을 살펴 보고 계시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지금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상황을 주님은 거짓 선지자라 명명하셨고 불법이라고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마태복음 7:15, 23. 먹고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한 교회와 선교사역 헌신은 주님이 금지하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크리스찬이 이 세상 노동을 하며 살아갈때에 주님께서 직접 스스로를 나타내시고 명하사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대로 행하시기 전까지는 교회와 사역창립 및 이에 참여하는 일이 주님판단에 자기동기와 재물섬기는 일 외에 다름 아니라하신 주님말씀을 기억하고 멀리하여야만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6:18, 6:24. 지금까지 정리된 내용들은 오직 현상적인 상황에만 국한하여 설명된 것이죠!
자, 이제 우리 주님께서 그러면 어떻게 우리 각 크리스찬이 노동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말씀하고 계신지 살펴 정리해 봅니다. (1)노동에 대한 댓가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려면 오직 주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 알고 믿을 수 있게 해 주셔야만 합니다. 이 일은 오직 기다림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이사야 43:10, 30:18. 이 일의 근본은 하나님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4:21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실때 그 심사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사랑이라 하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각 크리스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로 허락해 놓으신 가능한 노동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 일이 기다림이요, 그 결과는 주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 알려 주시는 긍휼입니다.
(2)노동을 하며 살아갈때 누구든지 나름의 계산이 있게 마련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각 크리스찬이 세상 누구나처럼 계산에 맞는 노동에 참여하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4:28.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 주실때에도 물론 마찬가지 방식으로 주님께서 미리 예산해 놓으시고 각 크리스찬에게 계시하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일을 겪게 되기 이전에는 자기 노동을 계산하여 행하는 데 스스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놓으신 노동과 그 댓가를 통한 일용할 양식 주심을 경험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이 일은 주님의 이 세상 전체를 통치하고 계시는 주님의 원칙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5:45, 28, 요한계시록 22:11.
(3)노동에 대한 각 크리스찬의 책임을 판단하실때 노동해야 하는 때와 노동을 멈추어야만 하는 때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말씀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42. 본래 마리아의 행동은 그 마음 속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서는 노동을 멈추었다는 점을 예수님께서 알고 계시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노동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명령해 주심을 기다리는 기간에 행해야 할 책임 있는 행동으로서, 마리아처럼, 행하는 게 좋은 것이라는 말씀이십니다. 주님을 뵙는 일이 벌어지면, 이제 자신의 계산대로 행해 오던 노동을 멈추는 일에 스스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게 좋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 크리스찬에게는 노동의 책임에 때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노동 해야할 책임과 노동을 멈춰야 할 책임입니다.
(4)주님께서 지시하셔서 하게 되는 일을 받은 크리스찬은 주님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7:24, 요한복음 6:27. 주님께서 명하시는 노동을 행할때에 각 크리스찬은 노동의 책임을 여전히 생각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 세상 통치 원칙은 누구나에게 여전히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노동보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우선한다는 사실이 계시받은 크리스찬을 구별짓는 것 뿐입니다. 마태복음 5:45, 48, 요한계시록 22:11.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뜻과 때를 확인하게 되고, 주님께서 이미 마련해 놓으신 예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나가게 되는 노동의 시간을 통해, 한 순간도 자기동기의 사람생각 즉 사단에게 휘둘려 휘청거리지 않게 되기 위해 저 노동의 이중 책임론을 기억하는 게 유익합니다. 누가복음 14:28, 마태복음 16:23. 노동을 위한 노동이 아닌, 노동과 휴식의 때를 정해 놓고 인도하시는 우리 주님을 알고 믿고 살아가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을 사는 길입니다.
크리스찬의 노동책임이중성을 알고, 주님사랑을 앞세워 살아가는 각 크리스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주님께서 주님뜻대로 형통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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