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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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같이, 단순한 축복 [마 10:16, 창 8:11]

신명기6장7절 2021. 12. 12. 07:56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 받으실 때에 신비한 상황이 벌어 졌었다는 사실을 우리 크리스찬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세례요한과는 무관하게, 예수님께서 그 때에 기도하셨었고 이러한 일이 일어 났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1-22.

     [참고로,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저 장면을 하나님 아버지, 성령 하나님, 예수님,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 전부가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세례"가 우리 크리스찬의 세례임을 밝힌바 있습니다.]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성령 하나님이 나타나심을 알게 되었었다는 표현, The holy Spirit descebded upon Jesus in bodily form like a dove. 생생한 현장 경험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비둘기처럼 생긴걸 보고 그 자리에 있던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자기에게 나타난 걸 알게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비둘기라 말하는게 아니고, 비둘기 같은 모양이라는 표현은 마치 다니엘에게 보내진 천사의 모양을 사람의 모양이라는 뜻에서 그 희브리말 발음을 따라 가브리엘이라 이름붙여 표현하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사실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니엘 9:21.

     하나님 아버지께서 목소리를 보내셨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심어 주시고, 기쁘게 생각하신다는 생각을 이 세상 현장에서 알게 하실때 함께 보내진 비둘기 같은 모양의 하나님의 시각적 표상을 의미 깊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진 것 처럼, 제자들을 유대와 이스라엘 땅에 보내시면서 예수님께서 기쁘게 생각하시는 상황될 수 있도록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뱀같이 지혜롭다는 말씀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때 판단과 유의미한 연관 속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번역된  Simple as doves 비둘기들처럼 단순하게라는 말씀은 앞서 언급된 예수님 자신이 기억하고 계신 신비한 하나님계시장면속에 등장하게 된 비둘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씀임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또는 단순하라 하신 말씀은 모세를 통해 집필하여 전하여 지고 있는 창세기 8:11 비둘기 등장 장면을 통해 보다 생생한 현실감을 느낄 수가 있고, 이는 예수님께서 너무도 잘 알고 있으셨을 것임을 생각해 볼때 오늘 크리스찬의 예수님 말씀 이해에 큰 도움이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용기있게 뜯어낸] 감람 잎사귀 [하나]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줄 알았[다]." 창세기 8:11.

     영어번역에는 있고, 한국어 번역어에 누락된 부분이 있는데, A Plucked-off olive leaf 잘라낸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라는 표현입니다. 한국어 번역자가 감람 새 잎사귀라 한 표현은, 잘라낸 감람 잎사귀 하나라는 표현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와는 매우 다른, 전체론적 상황전달 즉 도구주의적 번역관이 반영된 것이라 볼수 있는데, 이는 본래적인 표현인 뜯어낸 혹은 잘라낸 감람 잎사귀 하나라 할때 드러내고자 했던 모세의 의인화된 또는 성경독자에게 강조하고자 했던 정서적 감정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수 있습니다.

     비둘기의 입장에서 자신의 온 몸을 다 던져야만 가능했을 저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 뜯어내기 장면을 모세가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과 예수님께서 비둘기를 하나님의 단순한 축복이 임한 피조물로서 표상하셨다는 공통점에서 오늘 우리 크리스찬은 비둘기의 단순한 축복이 자신에게서 발견되는지 따져 봐야 할 때임을 말씀드리게 됩니다.

     창세기 8:6-12, 실수가 여러 곳 발견되는 한국어 번역이 아닌, 영어번역을 보면 홍수 40일 경과 후 노아가 물이 지면에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여 까마귀를 내어 보내고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까마귀에 관한 한국의 정서적 표현 중에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잘 까먹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의 까마귀는 노아의 의도에 맞지 않게 그저 이리저리 날아만 다녔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비둘기는 8:11에 전율할만큼 강한 표현인 용기내어야만 뜯어 낼 수 있었을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를 자기 입에 물고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비둘기의 저 장면을 기록할때에 얼마나 큰 하나님사랑의 감동과 전율을 경험하게 되었을 지를 금새 알아 차릴 수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온 몸을 던져, 자기 목숨을 걸고 뜯어낸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 비둘기의 용기 있는 사랑!

     예수님께서도 저 장면에서 같은 심정을, 하나님 사랑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용기를, 비둘기의 깊고 단순한 축복을 우리 크리스찬에게 주시기 원하셨었고, 지금도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왜 축복이냐 하면, 누구든지 혹 훈련을 받았었다 할지라도 까마귀처럼 자기 몸까지 던져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를 뜯어내어야만 할 상황일때 그러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이러저리 궁리만 하다 끝나고 싶은 피조물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비둘기 처럼 자기 몸 던져 혹 다치더라도 목숨보다 사랑에 감사표현할 용기 있는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은 피조물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살아가기 쉽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피조물의 한계를 바꿔주시어 단순한 복된 인생으로 살게 해 주시겠다는 함축적인 표현을 지금 제자들 오늘 우리 크리스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보내실때, 가야 할때, 온 몸 던지는 용기내어 가는 단순한 축복입니다. 우리 피조물로서는 모르지만, 모든 걸 다 아시고 통치하시는 주님을 사랑하여 내는 결단을 말합니다.

     비둘기가 사람처럼 생각하는 피조물이 아니지만, 모세를 통해 하나님사랑의 단순한 축복을 비둘기를 통해 느낄 수 있게 하시고, 또 예수님의 세례장면과 말씀을 통해서 비둘기 같이 단순한 축복을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현장을 생각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비둘기 같이, 단순한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기준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비둘기가 자기로서는 그저 막다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로 살았을 뿐인데,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 일에 참예케 된 것 뿐인데, 그 단순한 축복이 실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임받은 바요, 그리하여 예수님의 약속대로 주님뵙는 신비한 계시를 직접 체험하여 몰랐던 일들을 알게 해 주시는 살아계신 주님의 사람, 크리스찬 됨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21, 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