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말합니다. 왜 다윗은 주께만 범죄했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 봅니다.
시편 41: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다윗은 자기의 영혼 = 호흡 = 곧 삶을 고쳐 달라 말합니다. 영혼이 호흡인 이유 그리고 삶인 이유는 창세기 2:7에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이란 Being 산 존재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삶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는 이유는 스스로 결정하여 행한 삶이 결코 주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행하게 된 일과 분명히 구별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혼인잔치에서 하신 말씀, 요한복음 2:4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 말씀은 곧 마태복음 7:24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라]."
다윗은 주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리다 자기결단하여 스스로 행하여 성취를 보게된 그 행위가 주님께 범죄라 고백합니다. 누구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자신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렇게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윗의 심정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범죄하였다는 말은 따라서 내가 주님께만 범죄하였습니다라는 말과 똑 같은 의미로 볼수 있습니다. 시편 143:2.
다윗이 기다리는 여호와의 긍휼, 그 뜻은 이사야 30:18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고 있는 바와 꼭 마찬가지로, 은혜 =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자기결단 또는 기다림의 기회, 긍휼 = 주님의 일단락 시켜주심 또는 주님께서 개입하셔서 사건을 일단락 시켜주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주님께서 자기의 곤란을 살피사 일단락시켜 주시기를 기다리다, 자기 스스로 더 나쁜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결단하여 결론나게 했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만 범죄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그 일을 허락하셔서 다윗의 행사가 원대로 성취되었으니 감사가 있으나, 실상 자기 마음속에서 나오는 소리는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 곧 지시하심이 없으셨으니 즉 주님의 긍휼하심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이 아니므로 더 이상 앞으로는 이렇게 일이 처리되지 않고 주님께서 긍휼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란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처럼 살지 않으려는 다윗의 하나님 앞 다짐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시편 51:4에서도 똑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판결]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선고]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앞서와 같은 상황이해 및 다윗의 심정을 전제하여 볼때, 다윗이 사람들에게 범죄한 것이 없고 마땅한 일을 행한 것이나, 주님 앞에서는 주님 뜻과 적시에 주시는 주님의 지시하심 없이 자기결단에 의해 행한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명명하기를 "내가 주님께만 범죄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다윗은 이러한 자기 고백이 하나님사랑이 동기가 된 것이므로 주님의 판결과 선고에 있어서는 모든 걸 아시는 대로 여전히 자기를 사랑해 주실 하나님이신줄 안다는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의 고백을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하겠습니다.
시편 51:4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상황 즉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 사무엘하 11:2, 우리아의 밧세바 사랑결여 상황을 다윗이 알수 있도록 하신분도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 사무엘하 11:8-9, 다윗의 밧세바 사랑이 하나님께 악행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행할수 밖에 없었다는 다윗의 처지, 사무엘하 11:27, 사랑은 항상 현재여야 한다는 다윗의 이해력, 사무엘하 12:22-23 등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방식의 핵심어가 바로 "주님께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들만 벌어진다는 사실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기에 저와같은 고백을 주님께만 할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난관도 형통도 다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면 일어날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일이 일어난 당시로서 모든게 완결된게 아니라는 사실도 모를수 없죠! 피조물인 사람의 이해력과 다른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기의 어쩔수 없는 무지를 고백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사야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다윗은 하나님 사랑하는 일을 가장 중히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수 있었습니다. 시편 31: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다윗은 하나님 사랑 때문에 이런 사랑을 사람을 향해서도 갖게 되었고 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주님께서 지시하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함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의 긴급함 간절함 죽음보다 큰 사랑을 위한 자기 움직임이 결코 주님께 향한 사랑보다 커서는 않되겠다는 자기 중심을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 = 내가 주께만 제일의 사랑을 하기 원합니다 = 내가 주께만 감사합니다. 다윗의 저 심정을 가진 크리스찬은 분명히 예수님의 요한복음 14:21, 6:27 약속대로 주님을 뵙게 되고 지시하심을 받게 되고, "주께만 감사하고, 사랑한다 고백하게 되고, 주님만 바라보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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