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 할수 있다! 이 말씀을 이해하시나요? 예수님과 바울이 저 말씀을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봅니다.
(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30세가 되기까지도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이 있기까지 꿈적하지 않으시고 그때를 기다리신 점은 잘 아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2:4이 그 함축을 잘 표현하고 있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2) 예수님께서, 유다의 하나님 모르는자의 배반 행동을 다른 제자들이 함께 목격하게 되었을 때에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주신 말씀과 행동이 있으셨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3) 예수님께서 제자 중 요한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실 때에 동시에 이 땅에서 자기를 뱃속에 있게 했다 태어나게 했던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향한 사랑도 함께 드러내셨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셨다]."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바울의 증언에 따르면, 고린도전서 9:5, 예수님의 제자들 11 모두 이후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사는 사람, 창세기 5:2의 복된 가정생활을 살아갔다 합니다. 요한은 자기사랑을 자기 어머니 살로메와 새 어머니 마리아에게까지 확장하여 살며, 결혼하고, 자녀 낳아 기르고,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며 이 땅의 인생을 살다 주님의 때에 주님의 사랑받는 경로를 밟았다는 점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자가 실상 그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 자로 살다 그 사랑을 인증받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1.
사랑하지 않고,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는 없습니다. 학술용어로 "Theory-laden obervation thesis 관찰의 이론 의존성 논제"로 한국에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유입니다. 요한이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할수 있었고, 해서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새 어머니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28, 하셨다는 주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태에서 낳게 되고 젖 먹일수 있었던 마리아가 복되다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누가복음 11:28.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습니까?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8.
자기뜻대로 성경의 어떤 구절을 선택하여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어리석은 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받고 사랑할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처하게 하신 상황 속에서 사랑하여 사랑받는 상대될때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런건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5) 바울은 위와같은 사실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던 흔적을 에베소서 5:1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가 잘 아는 바와같이 본받는 신앙은 추천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요한복음 21:22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요한을]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베드로에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각 사람마다 하나님사랑받아 하게 되는 방식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본받아 사는 일은 사랑과 무관한 어리석은 인생 만들뿐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저 표현은 "하나님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할수 있다"는 말 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피조물이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요? 딱 한 사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동과 말씀이 있죠! 요한복음 13:14입니다. 위 (2)참고.
요한에게 명하셨던 구체적인 지시내용이 함축하는 것 처럼, 사랑은 외모를 닮아보고자 해서 되는 일이 전혀 아니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뿐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 일, 즉 요한복음 14:21의 하나님사랑받는자 된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어떻게 살며 하나님사랑하는 마음씀을 가져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계신 자기환경, 즉 부부사랑 자녀사랑 가족사랑부터 실행에 옮겨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가정생활 밖의 인간관계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해야만 합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가장 깊은 주의를 가지라 하시는 말씀은 우리 주 예수님의 성령을 받은 크리스찬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그 핵심은 이사야 58: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너희 역군을 압제하는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고칠기회 되도록 기회주고 계심을 깨달을 것이나, 이미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사람은 자기 일의 형통에만 관심을 갖고 내리 달리다 망할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예수님께서 지금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원칙때문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게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하게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게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자." 요한계시록 22:11.
자기의 부부사랑 자녀사랑 가족사랑만 실행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자기 가까이 있게 한 이웃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의 사랑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사랑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각 크리스찬과 목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자기 부부 가족 가정사랑으로 먼저 나타내야 할뿐만 아니라, 섬기거나 관계하거나 시무하게 된 교회의 각 교우관계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신 침범할수 없는 부부 가족 가정사랑이 보호받을수 있고 또 각 사업체나 시무영역마다 똑같이 침범할수 없는 그 사랑의 보호막이 제도화 되어 실행될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6) LOVED/LOVE = BELOVED. 크리스찬이 예수님을 사랑했다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1 약속대로 예수님께 사랑받는 크리스찬이 된 증거가 있을 것입니다. LOVED --> BELOVED 바로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자신을 나나태셨다면 그 크리스찬은 예수님을 사랑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실 것입니다. LOVED --> BELOVED = LOVE. 구약용어로 선지자는 신약용어로 예수님을 뵌 크리스찬입니다. 사랑받고 사랑할수 있는 크리스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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