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은 사회문화적인 정서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잘 아는것처럼, 피부미인은 영양소가 풍성한 양식을 피부에 접촉시키는 방법에 몰두합니다. 왜 그런가요? 신체적인 사회문화적 현금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돈때문이지요! 그 현실적 핵심문제는 따라서 미인을 볼때에 그 배경도 같이 보게 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자동으로 인식됩니다. 이른바 탈렌트 대중성을 추구하는 가수들, 좀더 광의의 의미로 말하자면 유교문화에 기반한 정치권력추구와 휘두름 그리고 이를 잡기위한 한국적 핵심인 지성 또는 학력의존성을 보게되면 그 배경에 대한 의미이해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범주적 생각을 갖게합니다.
현대 대중매체의존적 미적판단, 정치권력적 권위주의, 사회문화적 약육강식의 세력추구가 배척을 낳습니다. 크리스찬은 이때 어떠해야할까요? 오늘 대부분의 한국교인들은 크리스찬의 사랑에 무관심한듯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우선시될때, 배척은 한국 유교사회문화권 속에서 자연현상처럼 한국교인들을 휘둘림 당하게 합니다.
크리스찬이 하나님을 사랑할때, 주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신 상황을 떠올릴만한 재현적 생활세계 현장 앞에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고 장단을 맞출 크리스찬은 존재치 않을 것입니다. 오직 자기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교인들은 예수님 배척에 생각없이 참여하겠죠! 이 후자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예수님의 배척을 지켜보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현장에 있게 되었던 JOHN MARK 마가의 예수님사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마가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마가의 다락방의 주인 예루살렘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알수 있듯이, 예루살렘 마리아는 큰 집을 소유하였었고, 영어권 신학자들의 오랜 연구서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듯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모텔 또는 호텔을 경영한 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만찬 곧 이 세상에서 단 한번뿐인 성찬식을 거행할수 있게 했었고 또 예수님의 사망과 부활 승천이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크리스찬 형제들 120명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형제들이 함께 모일수 있을 만큼 넓은 장소를 소유했었습니다.
마가는 이러한 가정환경을 배경으로 예수님의 30-33세 사이의 사역과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의 제자들 또는 사도들의 사역현장을 목격하며 자신의 예수님 사랑을 독특한 관점에서 인식하고 반응할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겪었었다는 점을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이 중에 마가복음을 통해 드러나는 마가의 상황과 인식태도에 대한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마가복음 14:50-52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한 청년은 마가 자신입니다. 제자들은 사회문화적 배척 정서의 두려움 때문에 다 도망하였지만, 마가는 미친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예수님사랑을 놓치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장면입니다. 사회문화적 배척 상황에서 사랑을 보일수 있는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는 마가를 볼수 있는지요!
마가복음 15:34-38 “제 구시에 [현재시간으로 오후 3시]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곁에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절규하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마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3시간이 지나기까지 지켜보다가 사회문화적인 배척 상황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예수님사랑과 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차갑게 보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에 대한 배척, 둘로 나누어 짐을 주목하였습니다.
사회문화적 배척정서에 휘둘려 예수님의 입술에 신포도주를 찍은 해융을 갈대로 들이미는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허용하심이 있게 되었는지를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9:28-30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유교적 사회문화를 그대로 받아 복음을 변용시킨 대부분의 현대 한국교회 교인들이 지금도 생각없이 저지르고 있고 또 저지르기 쉬운 저 배척, 그러나 크리스찬이라면 절대 가까이도 가지 않을 저 배척정서의 무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또 예수님의 공중재림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69:21-22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저의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야기한 사회문화적인 배척을 넘어, 마가처럼 예수님 사랑의 마음을 갖고 실천하는 일은 미적 정치권력적 현금가치를 좇지 않아야 함을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될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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