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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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재림, 땅아닌 하늘중심 표현이다 [사 43:10, 요 14:3]

신명기6장7절 2020. 9. 30. 05:01

성경에는 공중재림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 말을 신학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이 중심이아니라, 공중 즉 하늘이 중심이라는 점을 나타나기 위해서 사용되기 시작한 표현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강조점으로서 재림이라는 말 자체도 다시온다는 말의 의미를 관찰적 관점에서 사용하게 된 표현어 이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자, 공중재림이라는 말의 의도와 의미를 이렇게 정리해 보면, 하늘에 예수님께서 다시 보이시게 되리라는 말 이외에 다름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지상재림, 지상강림, 휴거 등의 표현도 성경에는 없는 표현을 신학적 의도를 갖고 해석적으로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주의해야만 할 일은 저 세 표현이 담고 있고 해석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내용들이 성경원어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번역어를 상상력으로 덧붙여 자기들 그룹 사람들의 욕망에 봉사하도록 정위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공통점은 이 세상중심주의 세력경배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4:28 예수님의 경고현장입니다. 거기서 밥얻어먹으려고 참여하여 밥되렵니까? 참여하거나 동조해서는 스스로 속임당하는 인생된다는 점을 알고 반드시 멀리해야만 합니다.)

 

이사야 43:10에는 신명기 18:18 모세를 통해 예언으로 주신 "그 선지자" 곧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만"을 강조하여 "전무후무한 사건"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스스로를 보이게 나타나실 것을 재차 예언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강조점은 "그 선지자 하나" = "전무후무한 보이시는 하나님 한분"입니다. 일회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반복되게 하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신 점에 유의해야만 합니다. (이 점에서 구약성경을 구조적으로 예수님 사역이나 성경해석의 예시라는 시각에서 보고 설교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직사관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서 동양적 순환사관을 변용하고 있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사야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미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다시 사람의 아들로서 활동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동양적 불사조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혼동하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불사조처럼 하실수도 있으시겠으나,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으시다고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무후무"란 재현되지 않을 것을 강조하신 표현이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재차 시각적으로 보이시게 될 시점과 이 땅에 재차 오셔서 예전과 같이 활동하실 것이라는 동양적 상상을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을 동양적 상상력으로 읽을때 발생할수 있는 어리석은 오해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하신 바 관찰가능하도록 또는 시각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실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지금 이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은 모두 이 세상에 지금 보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다시 와서 데려 가실때 예수님을 볼수 있게 됩니다. 어디섭니까? 그건 공중 곧 하늘에서 입니다. 예수님은 일단 이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을 성취하셨고,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으시겠다고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는 결코 이 땅에 내려 오시지 않으시며, 공중 곧 하늘에서 온 인류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셔서 시각적으로 목격하는 시간을 창조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어디서 일어나는 일이든 중계되는 상황을 압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을 이루실지는 그때 가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통곡하는 인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몸으로 변화되었으나, 통곡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한채 살아온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게 되겠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엔 전혀 기회가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어 그렇습니다. 기회는 오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뿐입니다. 통곡하는 자들은 전부 사도 요한을 통해 이미 예고하신대로 불못으로 인도하는 천사들을 통해 영원히 타기만하는 재와 흙으로 존재하게 된 운명을 맞닥뜨리게 되었음을 모를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4:1-3, 요한복음 5:25-29, 요한계시록 20:9-15.

 

마태복음 24: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지막 나팔소리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불려지게 되며, 이는 곧 예수님께서 낙원을 고쳐 만드신 하나님나라 곧 크리스찬을 위한 처소로 이끄는 천사들의 공중 곧 하늘 활동의 시작을 말합니다. 아주 순식간,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 질 일이라 하십니다. 결코 이 세상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이 세상 각지에 흩어져 살게 하셨던 크리스찬 중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계시명령대로 살았던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 있게 될 크리스찬을 영원한 몸으로 변화시키셔서 하늘 각각의 처소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상황에 대해 예수님께서 알도록 해 주셨음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비밀이라는 말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바울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살아가면서 자기 마음 속 깊이 예수님의 나팔명령과 함께 영원한 몸으로 변화하게 될 온 인류의 사건 속에서 자기에게도 하늘 처소가 있게 될 것임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알고 믿고 깨닫게 해 주시지 않고는 불가능한 상황언급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바울의 삶의 중심이 이 세상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매여 사는 크리스찬이 이 세상 종말 시점에 예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원한 몸의 변화와 함께 예수님께서 예비해 주신 하늘 처소로 이끄는 천사들을 통해 인도함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예수님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27, 40, 14:21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을 사랑하여 인정받게 되고 그 증거로서 직접 뵙게 되는 체험 즉 말씀주심 비전태워주심 심부름시키심 등 계시가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에 대한 이해는 이곳 [크리스찬의 계명]을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