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와 놀부전에서 놀부의 아내가 흥부의 뺨에 주걱을 휘두르는 장면은 현대 한국대형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형교회 목사들 또는 자기교회 목사만 목사지 이름없는 교회나 무임 목사는 그저 무능력하며, 큰 교회 다니는 사람 화나게 하면 뺨도 맞을 수 있는 불쌍한 약자라는 정서를 갖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놀부, 놀부의 아내, 현대 한국의 놀부 크리스찬은 다 같이 덩치큰 건물이 있고, 힘이 있고, 세력을 과시할수 있는 교회와 정서적 동일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니엘 11:38은 이 점을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세력의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금 은 보석 보물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를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력의 신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들 즉 놀부 크리스찬들이 향하는 교회의 특징이 주님께서 공중재림하여 오시기 직전에 분명히 드러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8에서 발견되는 표현은 독수리교회입니다. 현대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이 운영하는 교회들 즉 독수리목사들의 교회입니다. 이 독수리목사들은 놀부 크리스찬의 물질중심적 교회주의 생활모토를 생산해 내며, 모여든 놀부 크리스찬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 한국대형교회가 독수리 세력교회된 현실모습입니다.
독수리교회 또는 독수리 세력교회에 모인 놀부 크리스찬들은 예수님께서 한사코 거절하라고 말씀하셨던 "우리"교회와 "서로"를 칭찬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마태복음 7:22에서 예수님은 독수리목사들이 우리가 주체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았다고 스스로 밝힘으로서 거짓 선지자노릇한 근거를 댄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주의를 귀울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44에서 예수님께서 놀부 유대인들이 서로를 위한 영광을 찾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수 없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서로 칭찬하는 일을 찾으며 살아갈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을수 없게 된 놀부 크리스찬으로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15과 23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사역 이유를 노략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자기결단 때문에 시작된 사역이니 자기중심적인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수 없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2:6에서 가룟 유다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돈을 훔쳐가는 도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도 요한의 표현과 정서를 공유하는 말입니다. 독수리목사들도 놀부 크리스찬들도 이와 꼭같은 정서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을 깊이 주의해야만 할때입니다.
자, 독수리목사들이 놀부 크리스찬과 공유하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의 한 예를 들어봅니다. 마태복음 26:13에 보면, 예수님께서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자기 머리와 발에 붓고 씻어준 한 여인이 복음전파와 함께 기념될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7절에는 예수님의 머리에, 요한복음 12:3에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 한 옥합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줍니다. 이 사건을 전하는 독수리목사들과 놀부 크리스찬의 접근법과 사유 및 적용범주가 어떻게 공유될까요? 앞 첫 문단을 통해 이미 말씀드린바와같이, 예수님처럼 세력을 가지신 분 즉 능력 있는 분에게만 향유가 부어질 대상이라고 말해지고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은 사라지고, 현실 속에서 저 기념은 일종의 거래관계를 전제한다는 정서를 공유할테니까 말입니다.
능력 없는 사람에게는 경우가 다르다고 독수리목사도 놀부 크리스찬도 전제할 것입니다. 힘 센 자에게 힘이 보다 못 한 자가 투자하여 관계맺는 거래관계에서는 따라서 능력 없는 목사는 귀한 향유가 아니라, 뺨 맞는 것만으로도 즉 상대해 준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고 큰소리 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놀부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을 세력교회에서만 만날수 있다고 생각하며 독수리 밥이 되어 죽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부 크리스찬을 거절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복음 8:20에서 거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마가복음 2:4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의 가버나움 집 지붕을 한 중풍병자 데려온 네 사람이 뜯어 구멍을 내놨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만나뵙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과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전무한 놀부 크리스찬들의 모임 곧 세력교회에서 나와야만 마태복음 26:24, 27:5 가룟 유다의 비극적인 길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27을 통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썩는 양식을 얻기 위해 세력을 좇는 일이 아니라 영생하는 일을 지시받게 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21 계시약속이 바로 그 핵심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21:15-17 베드로의 경우처럼 누군가를 사랑으로 먹이고 가르치라하시면 그대로 하면 될 것이며, 아직 아무런 지시를 받은 일도 없고 가족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 자녀들을 돌보라 하신 누가복음 23:28 말씀을 실천하며 주님사랑을 키워나가면 될 것입니다. 이 길만이 지금 하늘나라를 만들고 계시며 이 세상에 주님의 교회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예수님의 약속을 체험할 기회를 갖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4:3, 마태복음 16:18, 요한계시록 22:11.
'성경성구 > 잘못인용되는성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시 없는 영성은 유사성령론이다 [빌 2:1-2] (0) | 2021.08.24 |
---|---|
엡 6:5-9 [한글 번역] (0) | 2021.07.04 |
은혜아닌 자비를 말한다 [고전 15:31 날마다 죽음을 대한다] (0) | 2019.11.23 |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잘못 인용되는 성구들] (1) | 2019.10.15 |
잘못 걸린 성구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 [욥 8:7] (0) | 2019.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