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의 제 일 관문은 세례 또는 물세례입니다. 복음서를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에(1) 예수님께서 참여하셨었고, 마태복음 마지막 28장 끝 부분에 크리스찬 공통의 (2)물세례 낭독 성구가 있습니다.
전자의 욧점은 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도 세례를 베풀도록 하셨던 세례 요한을 천국에서 볼 수 없다하시면서 그 폭력성을 주목케 하셨는가 하는 점을 이해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1:11. 다른 모든 물세례 받은 사람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예수님의 물세례 촛점이 이렇게 전해집니다.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 자기에게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받으신 물세례의 이유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물이나 그 세례를 베푸는 세례 요한이 아니라, 하나님뜻대로 살겠다는 표시로서 참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에 능하여 힘의 질서를 좇아 생존해 온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자체를 베풀 수 없다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하셨었습니다. 마태복음 3:15. 동양 4국, 자연의 약육강식 적자생존 질서를 인륜이라 말한 공자를 좇아사는, 유교문화권 중 한곳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찬에게도 매우 귀중한 주님의 변화요구라 할수 있겠죠? 뭔 뜻인가요? 세례 요한의 세례모토는 회개였습니다. 회개 = 돌이킨다 = 사회문화적인 생활세계의 청결과 개선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모으는 사회문화적 집단화 현상을 성취한 것입니다. 종교적 집단 세력화죠! 지금으로 말하자면 초대형교회를 이룬 거죠! 이 점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하신 걸 알고 계시죠? 아무리 지금 초대형교회를 이루었다해도 이 세상에서 세례 요한에 비하면 세발의 피입니다. 마태복음 11:11. 불못에 들어갈 곳에 가서 물세례 받기 원하시나요?
예수님은 회개 = 하나님께로 돌이킨다 = 하나님께서 뜻하신 모든 뜻대로 살아가자는 뜻을 세례 요한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물세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미로 받으셔야만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비록 예수님께 물세례를 베풀었지만, 정작 자기의 물세례가 세력화된 유대인들에게 그 세례 효력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오해를 사게 하는 일을 멈추지 못했었습니다. (이런 점을 현대 학술용어로 간단히 말하자면, 전건부정논변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사랑과 그 뜻대로 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 또는 물세례 형식이 마치 무슨 힘이 있는 것처럼 여김으로서 하나님나라와 무관한 이 세상 집단화의 입문과정으로 인식되게 했고, 예수님께서 그 지점을 지적하셔서 천국과 무관하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후자 즉 물세례 낭독 성구에 대한 현실을 생각해 봅니다.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한국교회의 세례는 보통 저 물세례 집례문에 뭔가를 추가합니다. 그 내용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십일조와 사회문화적인 도덕적 행위에 대한 다짐과 공개선언입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처럼, 교회집단화 현상을 성취하는 중요한 시점으로서 물세례를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세례 요한에게 향해 예수님께서 내리신 판단대상에서 멀지 않습니다. 천국과 무관한 물세례죠! 이런 세속적 교회목사, 세례 집례자가 예수님께로부터 세례 요한이 받아야만 했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과 같은 무리에 속하여 또는 그와 같은 교회를 통한 사회문화적인 세례를 받은 교인 또는 크리스찬은 어떨까요? 이미 고대 로마교회에서 이단논쟁결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는 이 사회문화적 세례문제에 대해 결론 내린 점을 참고해 보죠! 그 욧점은 세례 집례자와 무관하게 물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면 항상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학술용어로 간단히 말하자면, 전건긍정논변의 경우입니다. 물세례 집례문 자체에는 하자가 없으므로 형식상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부가적인 사항에 대하여는 무시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각 개인별로 하나님사랑 없는 물세례를 받았다면 무익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물세례 받은 의도가 하나님사랑이었다면, 거기를 빨리 나와야 옳죠! )
자, 이제 어떠한 형태의 세례를 받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과연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자세로 받은 세례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이해하실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미로 물세례를 받았는가? 물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일개 피조물일 뿐입니다. 물 = 사회문화 생활세계! 이게 영어권 용어 WATER 워러, 물이 함축하고 있는 뜻입니다. 어떤 사회적 기능을 표방하거나 암묵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적인 세상교회에 소속하는 입회절차를 밟은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 입니다. 여기에 머물러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거나 받아들인다면, 세례 요한에게 내려진 결론을 공유하게 될뿐입니다. 어림도 없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기억해야만 합니다. 물세례로서 저절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건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원한다면, 하나님뜻대로 살기로 작정했다는 표시로서 물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잘 모르고 받았다해도, 새롭게 뜻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다시 물세례를 받아야만 할 이유가 뭐겠습니까?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면 됩니다. 어떻게 확신의 단계에 도달할까요? 요한복음 14:21,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사랑으로 계시해 주실때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하신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요한복음 3:3, 5. 물은 피조물로서 힘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창조주 하나님 즉 예수님의 성령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처럼 보혜사로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 계시는 동안 예수님뜻대로 보혜사로서, 크리스찬에게 나타나시는 예수님체험의 현재적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14:16. 예수님의 약속대로 비전과 말씀과 명령을 계시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21. 물세례로서 하나님사랑을 결단하고, 예수님께서 크리스찬의 사랑을 인정하실때 약속대로 계시해 주실때 성령님을 만납니다. 이 장면, 이 상황을 성령세례라 부릅니다.
성경의 성령세례를 세례 요한의 물세례처럼 사회문화집단화 현상으로 바라보고 (교회의 꿈으로) 추구한다면, 세례 요한에게 내려진 예수님의 판단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은 사도행전에 잘 전해지고 있죠!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이 충만한자로 인정받던 예루살렘교회 7집사중 하나였던 빌립은 갈릴리 사람들 120명의 집단성령세례 현상 이후 벌어졌을 흉내내기 성령운동 (성령세례를 자기의 욕구 욕망 꿈으로 받고자 하여 자기생각의 깊은 곳으로부터 자기 소리를 듣고 성령을 만났다고 스스로 속임당하는 마곡 땅의 곡과 같은 사람들이 참여한 교회집단화 모토)에 참여하지 않았었고, 때문에 성령세례를 실상 받지 못한채 복음을 전하다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안수받고 나서야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6:3, 8:16. 성령세례는 예수님의 성령께서 주실때 받는 계시체험과 다른게 아닙니다. 사회문화집단화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서 성령님을 체험하게 된 빌립 집사의 경우를 주목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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