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생명의 위협이 매우 위중한 때라고 판단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집을 나서 돌베개를 취하여 자는 중에 자기에게 새로운 생활세계의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자기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돌베개는 이로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 The Gateway to Heaven [바른 번역은 the Gate to Heavens 하늘들의 문]을 알게하고 기억나게 하는 상징 피조물로 명명되어 벧엘이라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7:45, 28:10-19.
야곱은 그곳 벧엘에서 땅과 하늘들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를 보았고 움직이는 천사를 보았고 말씀주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 새로운 생활세계를 야곱에게 보게 하셨을때 그가 취했던 그 돌베개는 그가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주목하지 못하였었다면 아마도 샤머니즘적 성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창세기 28:12, 요한복음 1:51. 야곱은 어머니의 태몽신탁 [영어번역으로 사용하고 있는 Birth Oracle, 한국신학계에서 저 인문학적 번역을 사용해야 할 때라 봄]을 기억하며 살아왔던 것과 꼭 마찬가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과 자기처지를 견주어 문제해결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보호해 주실 것을 요청함으로서 피조물 우상화를 넘어섭니다. 창세기 25:21-23, 28:20-22.
그 돌베개를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놓고, 자기 가야 할 길,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그 돌베개는 생명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생명을 여기 이 세상 생활세계에 처하게도 하시고 저 위 하나님나라 생활세계에 처하게도 하신다는 예수님 말씀처럼 야곱은 벌써 그 사실을 바로 이해하고 있는 것 입니다. 누가복음 20:38. 달리 말하자면, 저 의미깊은 돌베개지만 야곱의 처지가 그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닐 만 하지 않았다는 자기 현실 인정의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돌베개는 깊은 의미가 있지만, 이미 과거의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생활세계의 꿈터를 향해 떠나야 산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닥다리와 말씀과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살펴 보시는 구름안테나를 바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보시는 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주님 공중재림 때 사랑받기 원하는 크리스찬들에게 침낭 하나씩 갖고 살아야 함을 깨닫도록 성도들의 진 Camp of Saints 이라 명명해 놓으신 사실도 알게 하셨으니, 나의 침낭은 새로운 생활세계의 꿈터를 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같습니다. 창세기 9:14, 출애굽기 13:21, 마태복음 17:5, 요한계시록 20:9.
[그림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필자가 Surrey 3 Civic Plaza에 만 4년간 41층 지상 123미터에 거주하며 보게 되었던 구름위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8JWaVrsTFGc
이것이 필자가 지금 처한 새로운 생활세계의 꿈터에 대한 야곱적 해석과 적용입니다. 야곱의 의미론을 요한의 의미론과 견주어 본 나의 침낭은 새로운 생활세계의 꿈터 앞에선 나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형체 없는 기억이 될 것입니다. 야곱처럼, 침낭은 내려 놓고 떠나야 매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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