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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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성구/잘못인용되는성구

잘못 인용되는 성구들 [롬 3:5-8, 마 11:12]

신명기6장7절 2016. 9. 8. 13:34

잘못 인용되는 성구들

[로마서 3:5-8, 마태복음 11:12]

 

설교자와 성도들이 성경말씀을 오류해석하고 잘못 인용하게 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각 사람중심 살피시는 이른바 마음심사 또는 마음판단 (HEART SCREENING) 기간을 이 세상 생명의 기간으로 정하신 때문이다.

 

     예레미야 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마음]을 살피며 폐부를[/중심을]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말라기 3:5-6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가까이] 임할 것이라 []술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위증]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 과부와 고아를 [속여 빼앗는 자들과] 나그네를 [헛 걸음질 치게]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 [대하여] 속히 증거[를 갖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30 "[곡식과 가라지]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요한계시록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게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하게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

 

     한국어 권에서 잘못 인용되고 있는 대표성구들중 "폭력과 거짓 또는 속임수"에 대한 말씀들을 살펴본다. 폭력과 거짓이 무엇이고, 어떻게 오해하여 잘못 사용하고 있는가? 폭력과 거짓 또는 속임수에 대한 기초개념은 창세기 3:1/ 6에서 발견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 거짓 또는 속임수는 저 뱀의 말씀의미 나누는 소통과정에서 등장한다. 말씀하신 하나님아닌, 듣는자의 목적있는 의미이해방식의 추구가 거짓과 속임수의 출발이라는 말씀이다. 폭력은 여자와 남편의 하나님말씀에 대한 무시 거절, 자기에게 허용된 힘 또는 능력의 관계단절적 또는 관계파괴적 사용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로마서 3:5-8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 바울의 설교는 사람의 말과 이 말에 대한 그릇됨을 지적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반면설명론"의 논법이 사용되고 있고, 현상학적 접근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람의 부패 즉 폭력과 거짓이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폭력과 거짓을 심판치 않으시리라는 세상의 논변을 바울은 틀렸다고 반박한다.

 

     혹 이 말씀을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인중 한 사람이라면, 우리 주 예수님의 세례 요한 이후의 현상학적 신앙의 문제지적에 대한 말씀도 오해하고 있을 수 있다. 마태복음 11:11-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폭력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나니 [] 침노하는[/폭력행하는 자가] 빼앗[고 있]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이 세상에서 성공 성취를 꿈꾸는 자아닌, 천국을 향하여 사는 자는 결코 폭력을 사용해서는 않된다는 말씀에 귀기울일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경 말라기 3:5/ 18 "속히 증거를 갖게 하시리라/ 그 때에 너희가 [다시] 의인과 악인 [사이의 구별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 [사이의 구별을 볼 것이]"는 말씀의 맥락에서 예언된 4:5말씀을 지시적으로 사용하고계시기 때문이다.

 

     스바냐 1:8-9 "여호와의 희생[/도살제]의 날에 내가 방백[/군주]들과 왕자들과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것이라] 그 날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폭력과] 궤휼[/거짓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은 의식으로 살며, 같은 문화의 옷을 입은 자들은 폭력과 거짓 또는 속임수가 성공주의적 결과론으로 정당화된다는 논변에 귀기울이겠지만, 복된 귀를 가진자는 폭력과 거짓 또는 속임수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하나님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의사였던 누가는 이방인처럼 세상욕구에 의존된 삶을 살며, 하나님말씀 성취를 믿지 못하며, 제멋대로 하나님말씀에 대한 오류해석과 자기행위 정당화논변을 펼치며 사는 폭력과 거짓 또는 속임수에 빠진 자들을 향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아주 간결하고 분명하게 전한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폭력으로 들어오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무효케됨]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누가복음 16:14-18)

 

     예컨대, 폭력과 속임수 또는 거짓에 대한 세상적인 관점에 빠져 "야곱과 에서의 사건"에 대한 오류해석과 잘못된 말씀인용의 선상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범하는 해석상의 문제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폭력과 속임수 또는 거짓"에 대한 세상적인 관점 즉 이방인적 관점이 그 뿌리에 있음을 지적하신다. "그가 나를 속임[/밀어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 27:36) 에서는 야곱에 대해 세상적인 폭력자요 속이는 자라 말한다. 자기 자신이 야곱과 맺은 소통적 관계적 정체성설정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이 아닌, 세상적인 관점에서 야곱에 대해 강한 불평과 적개심을 드러낸다. 과연 누가 폭력자인가? 부모와 형제로부터 그리고 실상은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버려진 야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은 에서에비해 사회문화적인 약자입장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하신다. 힘없는 자가 힘센자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가?

 

     오바댜 1:10-14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폭력]을 인하여 수욕[/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멀리 섰던 [/방관했던 그]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소유물]을 늑탈하며[/채갔던 그날]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중 한 사람 같았었도다[/이었도다] 네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응시하지 않고]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기뻐하지 않고]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니라 [/거만하게 말하지 말것이라]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적어도 너는]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응시하지 말고]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것이라]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그의 난민들을 살해하기 위해 있지 말고]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그의 도망자들을 배반하지 말] 것이니라."

 

     다시 한번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자. 스바냐 1:9 "그 날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폭력과] 궤휼[/거짓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하나님말씀에 대한 어떠한 오류해석과 잘못된 적용 즉 이방인과 같은 속임수나 거짓 그리고 폭력도 주님의 심판에서 예외없다는 말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