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타인의 죄에 대한 용서 또는 실수용서를 물리적 양화개념으로 접근 질문했을 때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대답하시면서 그 바른 이해의 관점을 '천국 또는 하늘나라가 자기 종들 또는 신하들과 계산 정산 즉 회계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던 임금 또는 왕과 비유될 수 있는 이유와 같다'는 말씀을 주셨었습니다.
Matthew 18:21-23 "Then Peter approaching asked him [Jesus], "Lord, if my brother sins against me, how often must I forgive him? As many as seven times?" Jesus answered,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That is why the kingdom of heaven may be likened to a king who decided to settle accounts with his servants." [New American Bible]
마태복음 18:21-23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그 게] 천국[이 자기] 종들과 회계하려 [했]던 어떤 임금과 [비유될 수 있는 이유니라]." [개역한글판 번역을 최대로 살린 New American Bible 번역]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천국 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종들 사이의 상황이 아니라 종들과 그 종들의 주인 또는 섬기는 자인 임금 또는 왕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는 점에서 각 사람이 타인의 관계적 실수 또는 죄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라보고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용서란 보복 또는 앙갚음 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하고 하나님뜻에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 22:11. 보복 또는 응갚음 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경적으로 [1]"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은혜"를 말하는 것일 수 있고, 또 가족중에서나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약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강자의 마음씀으로 [2]"거저 베풀고자 한다"는 의미로 "긍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 30:18.
요한계시록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게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하게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자]." -[용서란, 자기를 속이거나 죄를 지은 타자를 자신의 힘에 의해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세상 인생 통치원칙대로 같은 류의 사람들이 작동하고 있는 정글의 자연법칙 약육강식 적자생존에 의해 자연 소멸하도록 그대로 놔두고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용서 언행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이 세상 생존기간 동안 속이거나 속임을 당하거나 죄를 짓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그러한 언행이 반복되지 않게 회피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 즉 은혜가 허락되어 있고 또한 그러한 상황을 일단락시켜주시는 긍휼을 경험할수 있게 하고 계시다는 점을 주목하여, 가족 중에서나 상대적 약자 중 속이거나 죄를 지은 타자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기를 기도하는 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핵심점은 은혜이거나 긍휼이거나간에 용서란 자신의 언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나 긍휼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걸 말하지 자신의 직접적인 언행의 결과를 은혜나 긍휼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명분이 있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결단 언행한 은혜나 긍휼조차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행한 것이므로 자신은 무익한 종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이러한 이유 또는 명분이란 주님의 계시 외에 상응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양화적 용서 접근법에 대해 주신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가족이나 관계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겪게 되는 죄나 실수의 곤란과 피해를 회피하기 위한 언행없이 반복적으로 입게 되도록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거나 살아간다면 타인의 죄나 실수가 자기에게 반복될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의 지속적 관계를 생각하며 타자에 대한 보복이나 앙갚음 없이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비유적 이유설명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긍휼 = 불쌍히 여기는 마음 = 사건을 일단락시키는 언행"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에게 베푸시는 통치행위를 표상하는 말인데 사람과 사람관계 중에서는 강자가 약자에게 가질 수 있는 마음씀입니다. 마태복음 18:33. 타인을 향한 보복이나 앙갚음 같은 폭력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회피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시공간에서 반복적으로 타인의 죄와 실수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같은 상황을 유지해 나가며 살아갈때 가져야 할 언행으로 주신 말씀이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입니다.
마태복음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셨다]. -[불쌍히 여김 = 긍휼 = 자기에게 죄나 실수를 범한 타자를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 버려 두셔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 타자에게 변화가 있도록 상황을 일단락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기도하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 타자가 변화의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되면 같은 죄나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생각될때 그 타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고, 그 타자의 상황 자체를 해결 또는 해소시켜야만 같은 죄나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때 그 타자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죄에 대한 용서 또는 실수 용서는 양화적 개념 즉 용서의 횟수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일이 이미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바른 태도란 자기 눈 앞에 있는 그 현실적 상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언행결단을 내리는 일이 우선이라는 말씀이 예수님 말씀의 핵심점입니다. 요한복음 17:15.
요한복음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죄나 실수를 용서해야만 타자의 죄나 실수가 반복되는 세상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죄나 실수가 벌어지고 있는 시공간 또는 상황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지, 자기의 힘으로 타자에게 대응하여서는 불가능 합니다. 악은 악의 정글의 자연법칙 약육강식 적자생존에 의해 자연 소멸하도록 그대로 놔 두시는 게 하나님의 이 세상 인생 통치원칙이시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죄 또는 실수를 일으킨 상황은 하나님께서 죄인이 죄를 계속 짓도록 또는 실수를 계속 하도록 그대로 허용하고 계셔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이므로, 그 죄를 지은자 또는 실수를 저지른 당사자는 그 끝이 가룟 유다와 같을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주의해야만 합니다. 요한계시록 22:11. 죽음과 영원한 벌을 받는 일로 결말지어지도록 하나님께서 내 버려 두신 자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6:24, 27:5. 이런 의미로, 자기 자유의지적 결단으로 인한 죄 또는 실수이거나 조건 상황에 의해 휘둘려 벌어진 죄나 실수의 언행이거나 간에 상관없이 이러한 사람은 자기가 가룟 유다와 매우 가까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돌이켜 하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26:24, 27:5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으니라]." -[죄나 실수를 반복하면, 그 끝이 악의 정글의 자연법칙 약육강식 적자생존에 의해 이 세상 악한 인생이 자연 소멸할때 영원한 벌을 받아 불에 탄 재처럼 사람형상 없는 흙이 되고 맙니다. 말라기 4: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행동을 취하는]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가 될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타인의 죄나 실수에 의해 곤란이나 황당함을 겪게 된 상황은 자기가 살아가며 관계하고 있는 시공간이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일에 적절치 않다는 사실과 그 상황에 계속 머무르면 그 일의 반복을 회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5:45. 가룟 유다처럼 거짓말과 도적질과 자기 중심적 결단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의 은혜 즉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막연한 기대감으로 같은 상황에 머무는 일을 반드시 피하고 새로운 시공간을 찾아 떠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12:6, 13:14-15, 14:21.
마태복음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타인의 죄나 실수를 겪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먼저 문제 상황의 반복 가능성이 있는 그 시공간을 떠나야만 해결 가능한 지를 따져봐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6, 13:14-15, 14:21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거짓이나 속임의 반복을 회피하는 일은 그러한 상황을 허락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세상 인생 통치원칙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언행에 따라 세상 악의 시공간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나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일이 실천적으로 가능하려면, (1)거짓말 속임수 도적질하는 자는 무시[= 용서]하고 (2)하나님을 사랑하는 집중력[= 긍휼 구하는 기도생활]을 가져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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