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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교회의 대형화는 물질권력욕에 눈이 멀었다는 증거들을 쏟아낸다. 예컨대, 교회의 절차적 정의를 말함으로서 교회의 세습과 목사청빙을 정당화하려한다. 이게 어찌 문제가 될까? 이것이 문제인 것을 알지 못하는 연유는 이러한 주의주장이 배경으로 갖고 있는 공동체정의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지하거나 욕망대로 산 탓에 합리적 사회정치철학적 논거를 무비판적으로 둘러대려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정의론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신의 뜻은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불가지론적 이슬람신학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신의 뜻이 알려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의 종교 공동체가 개발한 정의론은 자체적으로 합의 한 것이 곧 신의 뜻과 동일하다고 선언하는 방식으로 정리된 것이다. 힘센자에 의해 채택되는 강자의 정의 곧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적 정치철학이 종교정의론으로 탄생된 것이다. 여기에 참된 인격적인 신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국가사회가 곧 정의의 주체가 된다. 국가헌법이 그 정신적 선언이 된다.
인격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성경은 어디에도 저 공동체정의론이 숨쉬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다. 이게 크리스천의 생활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기준이다. 공동체적 절차와 그 합리성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 이미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로 듣게 된다. 사태가 이러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은 누구도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가만 놔두시지 않으시고 "나오라"지시 하신다. 그곳은 곧 하나님의 간섭없으심과 자기들 끼리의 약육강식 자연법칙적 파멸이 현실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종말 이전에는 그릇되어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놔 두신다 하셨다. 파멸은 자기들 스스로가 적자생존방식에 의해 경쟁하다 결정적으로 결말되는 것 뿐이다.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걸 그대로 놔두시면서, 그곳에 있는 자신의 사랑하시는 크리스천에게는 가만 놔두지 않으시고 지시하신다는 말씀이시다. "거기서 나오라!"
우리 주 예수님은 아주 간결하게 공동체정의론을 말하는 오늘 한국교회에도,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교회의 절차적 정의론으로 사회적 개체된 것을 말하는 교인들에게 그 사회적 영광이 주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찾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4 이 우리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공동체 정의론으로 정당화하여 크리스천들을 오해케 하려는가? 주님을 믿는 사람인가, 교회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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