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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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감사 [신앙인의 덕담, 고상한 신앙고백입니다]

신명기6장7절 2018. 11. 3. 10:54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힐렐라바이스쿨시스템 Hillel Rabbi Schools의 모토 Teaching Motto를 그대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세기전부터서야 저 성구를 서양 사람들이 황금율 Golden Rule이라 이름붙여 사용하기 시작했죠! 저 말씀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이유는 바로 앞절에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11.


     최근 한국 정치적 언사로 표현하자면, 덕담입니다. 덕담을 하라! 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네가 이런 은혜와 긍휼을 바란다는 뜻을 이런 식으로 전할 수 있지 않느냐는 뜻이죠! 하나님 앞에서 사람에게 한 덕담은 고상한 신앙고백에 가깝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상태 조건 능력 그 어떤 것이 상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 입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같은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덕담이 아니라, 인정 또는 평가가 됩니다.


     서양에서는 언어철학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전되었고, 이로 인해 영문학적 의미론의 체계가 사회적 분업의 결과임을 밝혀냈습니다. 사람의 말은 사회적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일뿐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말씀처럼 위력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회에 속해 산다면, 같은 말이라도 응당 전혀 효력이 없죠! 못 알아 듣는 말이니 말입니다.


     주님 말씀처럼 덕담한다해서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 진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어릭석고 무지하고 악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어떤 행동, 여기에는 언어가 가장 대표적인 행동에 들어갑니다, 어떤 말도 사람의 구원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홀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 어떤 행위로도 구원얻는다는 말을 할수 없다는 사실을 다 동의하면서도 왜 말을 함부로하지마라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권위를 세우기위함입니다. 자기가 한 마디하면 그것이 그대로 될터인데, 까불지마! 이런 어리석고 악한 마음의 흔적이 드러난 거죠! 이런 사람은 오직 사람 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의 사람일뿐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도무지 받지 않았습니다. 주님 명령대로 그곳을 떠나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도구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받더라." 사도행전 13:47-48.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덕담한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영생감사입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덕담도 마찬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


     바울의 저 말씀이 덕담인 이유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영생에 대한 확언을 할 수는 없고, 다만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고백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명은 분명해 보이는 영생을 잃었죠! 이럴때 분명해 보인다는 표현은 덕담이 됩니다. 만약 바울의 어떤 말이 그대로 하나님의 판단과 같다고 주장 한다면 그가 하나님일 것이요, 더 나아가 이른바 어리석고 악한 성직자들이 돈과 물질과 권위를 자기것으로 쌓기 위해 과시하는 허풍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대 로마교회에서 정치적 이단논쟁 중에 패한 성직자를 통해 세례된 사람들의 세례효력까지는 무효화할 수 없어서 세례집례자와 무관하게 세례는 무조건 효력있다고 결정한 과거의 사건을 모르는 무지를 드러내는 것 입니다.


     영생감사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실상 자신의 영생소망을 드러낼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주목하며 조건 상황 능력과 무관하게 정서적 복음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덕담 하는 일에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