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67 신명기6장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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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고통 [사회적인가, 천상적인가?]

신명기6장7절 2018. 9. 18. 05:03


경제적 고통은 2018년 한국과 세계 각국 여러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한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적 고통이란 무엇인가? 마음에 의한 판단작용이 고통과 평안을 가릅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 상황에 대해 판단함으로서 고통이라는 표현을 쓰게됩니다. 크리스찬에게 크게 두 가지가 의미있습니다. 하나는 이른바 사회적 경제활동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예상하거나 현재 겪고 있고 그것을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이때는 경제적 고통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중심이 사회적 인간인지, 이 유한한 세상을 넘어선 천상적인 가치관과 관점으로 살아가는 크리스찬인지를 판가름하게 하죠.


     사회적 어떤 필요가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야만 한다고, 따라서 다른 선택이란 없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경제적 고통은 사회적 고통인게 분명합니다. 이럴때 주님의 말씀은 뭘 의미할까요?

 

마태복음 6:30-34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구하는 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 ]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찾]으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아시면서 주신다는 말씀인가? 하나님나라와 의를 먼저 찾으라고? 그러면 교회를 찾아 가면 되겠지? 이렇게 단순 해석을 하고 설교를 하며 받아들이면, 교회라는 사회적 경제시스템에 기대를 걸게 되겠죠? 도움이 교우들로부터 온다는 경제심리적 상태에 의존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교회와 교회담임목사와 현실적 동일성으로 받아들이게 되겠죠? 이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의 이름을 크리스찬의 명분을 이용하여 사는 사회경제적 존재외에 다름이 아니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As It Is [하나님]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있지]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주님의 천상적 경제상황 해석의 단서는 상실되도 괜찮은가? 이러면 송두리채 천상적 크리스찬은 사리지고 오직 사회적 교인들만 교회에 있는 것 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천상적 경제상황이해 경제적 고통 때에 갖게 되는 크리스찬의 천상적 이유와 명분의 방향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몇 인물만 생각해 봐도 쉽게 천상적 계기들을 자신에게 적용가능합니다.


     우선적으로 주님께서 아시면서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는 상황에 대해 뭐라 말씀하셨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같은 말씀에 대해 누가복음 6:20에서는 좀 더 경제적 고통 해석에 가까운 표현을 합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주님께서 크리스찬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제적 상황을 외면하실때는 가난한 경험을 하게 하는 순간이라 말씀하십니다. 천상적 경제고통은 따라서 천국에 가까와지고 있다는 신호를 주심으로서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실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계신 때이죠!


     사람의 노력이나 힘으로서는 가난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적 경제여건의 필요를 떠나 천상적 경제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 사람을 크리스찬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귀감되는 인물들 두 사람을 살펴 봅니다. 첫째는 엘리야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경제적 상황을 아주 가난하게 만드시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그릿 시냇가에 숨고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열왕기상 17:3-4. 엘리야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명을 실천했으나 여전히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죽기를 구합니다. 이때 더 해야 할 일을 주시며 천사를 통해 먹이고 기운내게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9:5-8. 경제적 가난이 엘리야에게 고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더 중대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공중재림 하실때에 일어날 어려운 경제상황들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경제적 상황을 고통이 아니라 천상적 복음전파의 상황으로 이해해야 옳다는 뜻이죠.


     둘째로 천상적 경제상황 인식을 위해 도움되는 인물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셨을 때 모든 경제상황을 떠나 가난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처리과정에 주변 마을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분업의 혜택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진짜 선지자인데, 선지학교가 등장합니다. 뭔 뜻인가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실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선지학교를 다니는 생도들은 실상 가짜 선지자후보들이라 부를 수 있겠죠? 이 사람들이 엘리사를 따라다니며 도움을 청합니다. 엘리사는 그들의 경제적 고통 호소에 응답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경제적 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이끄시는 일을 행하는 과정에 저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천상적 경제상황 이해는 하나님닮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향한 계기가 있도록 엘리사를 이끌어 주었다! 이 점에서 오늘의 한국 크리스찬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관념을 버리고 천상적 경제상황 이해를 통해 가난을 체험하고자 하면, 갖고 있는 그것들이 실상 다 단념해야 할 것이라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엘리야처럼 혈혈단신 지시하시는 강가로 가 물을 먹고도 살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 입니다. 엘리사처럼 돈 없어도 새로 보여 주시는 그것들로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제거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것 입니다.


경제적 고통을 느낀다면, 사회적 기대와 필요의식을 떠나는 때라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직접 먹이시려 하시거나, 이미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주변의 경제적 고통을 면하게 해 주도록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는 주님의 때를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천상적 경제상황 이해가 크리스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