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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Bible 크리스찬성경은 Old Testament and New Testament 구약과 신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기록 그 중에서도 Gospels according to Matthew, Mark, Luke, and John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Jesus and His Language and Action 예수님 언행을 중심으로 신구약 전체를 읽고 이해할때 크리스찬이라 말합니다. 신약의 내용 중에는 바울의 서간 등 고대 크리스찬대표자회의를 통해 인정된 여러 크리스찬 말씀서들이 있고, 이의 기초적인 접근 이해력은 앞서 말한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서를 통해 알려진 예수님의 언행을 근거로한 사도들의 해석적 의도를 그 당시 받을만 하다고 판단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구약해석과 의미론은 신약 서간들 속의 언어이해가 어떻게 받아들여 졌었을까를 오늘 우리 각 크리스찬에게도 깨닫게 해 주는 기준이 됩니다.
한국교회 설교자 신학자 성도들 중에 바울서간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있는데, 첫째는 한국유교전통문화시스템 속에서 말씀을 변용한 한글성경번역서를 갖도록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도 한 이유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이고, 둘째는 구약용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로 서간에 사용된 용어를 한국문화중심적으로 그 의미를 잘못 붙여 사용해온 역사적 오용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한 예가 GRACE 은혜라는 용어입니다.
한국에서 사용되어져 오고 있는 은혜라는 말의 의미가 함축하고 있는 성경 속의 단어는 MERCY 자비 또는 긍휼입니다. 지금까지 자비 또는 긍휼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 자리에 은혜라는 말을 써 옴으로서 결과적으로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잘 못 알아듣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점은 영어권 유학을 통해 영어에 대한 접근과 이해력이 향상된 경우 금새 깨닫게 됩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한국교회와 크리스찬이 은혜라는 말이 아닌 긍휼 또는 자비라는 말로 바꿔 사용해야 할 이유를 간단히 정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긍휼로 알게되고 완성됩니다.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주님의 계시는 주님께서 긍휼베푸심으로 나타내시는 직접적인 주님의 행위입니다. 주님의 긍휼 계시의 이유 또는 목적은 요한복음 6:40의 영생구원입니다.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 -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날때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나타내 주시는 직접적인 주님의 행위연관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2)은혜는, 주님의 구원행위를 지칭하는 긍휼 이전의 시공간적 정서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기회를 의미할뿐 주님의 행동연관성은 없는 말입니다.
이사야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은혜는 사람에게 허락하신 시공간적 생명 있음과 바꿀 수 있는 기회 있음을 함축합니다. 주님께서 바꿀 기회를 주고 계시다는 의미가 은혜입니다. 긍휼은 일단락된 상황을 지칭합니다. 일어나셔서 결론을 내리실때를 가리킵니다. 긍휼히 여기셔서 그 뜻을 분명히 드러내실때 긍휼이라 말합니다. 은혜는 기회로 주신 상황을 지칭하고, 긍휼은 주님께서 직접적인 행동으로서 결과를 나타내심을 지칭합니다.
(3)주님 사랑의 완성인 영생구원의 계시 곧 긍휼계시가 크리스찬의 소망이기 때문에, 바울이 이방인지역을 향해 또는 이방지역교회에서 사용한 은혜라는 말이 아니라 그의 소망을 지칭하는 주님의 구원행위로서의 긍휼이라는 말 사용이 크리스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적 의미의 긍휼이란 주님의 직접적 행위로 나타내 주시는 계시뿐입니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사랑하는 크리스찬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는 계시를 통해서 영생구원의 소망을 알고 믿고 소망하는 인생되게 하시며, 이 일 곧 주님의 긍휼계시가 크리스찬의 소망이 됩니다.
이사야 5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 주님의 행동결과를 말합니다, 긍휼입니다. 장래에 확인될 사실에 대한 약속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은혜라는 말은 주님께서 긍휼로 나타내시는 계시를 경험한 경우에만 사용 가능한 결과론적 언어표현입니다. 그 정확한 의미를 따라 말하자면 긍휼소망이 있게 되었다 해야 하겠으나, 바울이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자에게 자기가 경험한 것과 같은 주님의 긍휼이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심어주기 위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이미 영생구원이 완성된 경우를 지칭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실 확인은 이 유한한 세상이 사라지고 오직 천국만 남아 있을때 주님 앞에서나 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주님께서 칠천인을 남길 것이라는 장래 사실은 주님의 긍휼로서 나타날 것입니다. 현재 저 칠천은 시공간적으로 기회를 가지고 있을뿐이며 그 잠재적 가능성에 비추어 은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맥적으로는 오직 엘리야만이 주님의 긍휼 나타내심이 있고, 칠천인은 은혜의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택함받은 오직 한 사람 엘리야에게 나타내신 주님의 긍휼과 그 가능성이 있는 칠천인 즉 주님 앞에서 엘리야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서 엘리야에게 공감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칠천이 있다는 사실을 엘리야에게 알려 주시는 데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 바울은 주님의 긍휼을 받은 자신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똑같은 마음씀을 갖고 있어 주님께서 긍휼베푸실 소망을 가진 자들이 시공간적 기회 곧 은혜 상태에 있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현재적 상태 또는 기회를 지시하는 은혜와 주님께서 직접적인 나타내심을 나타내는 계시를 택하심으로 말하려 한다면 은혜가 아니라 그 직접적 상황을 지칭하는 용어인 긍휼이 맞을 것 입니다. 바울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를 사도가 된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하고 있는 것 일지라도 저 은혜라는 말은 성경 의미론적으로 긍휼을 지칭합니다.
바울의 은혜라는 말의 의미는 구약성경속 언어의미론을 통해 이해되어야만 하며, 이를 통해서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은혜가 긍휼에 대한 소망을 담았으나 긍휼이 본래 주님의 행동을 의미하므로 이의 사용을 삼가하고 대신 사람의 입장에서 은혜를 선용하자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각 크리스찬이 본래적 의미를 따라 하나님의 긍휼계시를 통한 영생구원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요한복음 6:40을 근거로 은혜가 아니라 긍휼이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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